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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유의 「사설(師說)」은 스승을 나이나 신분으로 정하지 말고 '도(道)가 있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해요. 나보다 어리거나 지위가 낮아도 내가 모르는 도를 먼저 안 사람이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한유(韓愈, 768년부터 824년까지)는 당나라 때 이름난 문장가예요.
그가 801년부터 803년쯤 국자감이라는 나라 학교에서 사문박사(교수 같은 자리)로 일하던 무렵에 지은 짧은 글이 바로 「사설(師說)」이에요.
제목을 그대로 풀면 '스승(師)을 말한다(說)', 그러니까 '스승론'이에요.
이 글은 딱 한 가지를 따져요.
"스승이란 대체 무엇이고,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하나?"
요즘 말로 하면 '좋은 선생님의 조건'을 정면으로 정의한 글이죠.
분량은 짧지만, 동아시아에서 스승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글로 남았어요.
한유는 스승을 이렇게 정의해요.
師者所以傳道、授業、解惑也。 — 스승이란 도(道)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이다.
비유하자면 스승은 세 가지 일을 해요.
첫째 '전도(傳道)', 살아가는 큰 이치와 옳은 길을 전해 줘요.
둘째 '수업(授業)', 글자와 기술 같은 실제 배움을 가르쳐요.
셋째 '해혹(解惑)', 헷갈리는 것을 풀어 줘요.
우리가 지금도 학교 시간표를 '수업'이라 부르는데, 그 말이 바로 여기서 왔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스승의 자격을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해 주는가'로 정했다는 점이에요.
나이나 벼슬이 아니라 도를 전해 주느냐가 스승의 기준이 되는 거죠.
그래서 한유는 유명한 한마디를 남겨요.
道之所存,師之所存也。 — 도가 있는 곳에, 스승이 있다.
풀어 볼게요.
요리를 배우고 싶으면 나보다 어린 요리사에게도 배워야 하고, 스마트폰을 처음 켜 본 할머니에게는 손주가 스승이 될 수 있어요.
지위가 높고 낮음,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가 배우려는 그 도(道)를 가진 사람'이 곧 스승이라는 뜻이에요.
한유는 한 걸음 더 나가요.
是故弟子不必不如師,師不必賢於弟子;聞道有先後,術業有專攻,如是而已。 —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한 것은 아니고, 스승이 반드시 제자보다 현명한 것도 아니다. 도를 들음에 앞뒤가 있고, 학문과 기예에는 각기 전공이 있을 뿐이다.
스승과 제자는 위아래로 굳어진 계급이 아니에요.
그저 누가 먼저 그 도를 들었느냐(聞道有先後), 누가 그 분야를 전문으로 파고들었느냐(術業有專攻)의 차이일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 제자가 어떤 분야에선 스승보다 나을 수도 있고, 스승도 모르는 게 있으면 배우면 돼요.
표로 한번 정리해 볼게요.
| 흔한 생각 | 한유의 「사설」 |
|---|---|
| 나이 많은 사람이 스승이다 | 도가 있는 사람이 스승이다 |
| 스승은 늘 제자보다 낫다 | 분야에 따라 제자가 나을 수도 있다 |
| 모르는 걸 묻는 건 창피하다 | 먼저 안 사람에게 배우면 된다 |
「사설」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 남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할 이유가 사라져요.
스승의 자격을 신분이나 나이에서 떼어 내 '도가 있느냐'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에요.
모르면 먼저 안 사람에게 묻는 것, 한유에게는 그게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연한 배움의 길이었어요.
「사설」은 짧지만 스승을 새로 정의한 글이에요.
스승은 도를 전하고, 가르치고, 의혹을 풀어 주는(傳道·授業·解惑) 사람이고, 그 자격은 나이나 신분이 아니라 도가 있느냐(道之所存, 師之所存也)로 정해져요.
그래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도 있고, 스승도 모르면 배우면 돼요.
오늘 우리가 유튜브로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울 때, 이미 한유가 말한 방식대로 살고 있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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