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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포하(apoha, 遮詮)는 '배제'라는 뜻이에요. 다르마키르티는 '소'라는 말이 모든 소가 나눠 가진 어떤 공통 실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소가 아닌 것들을 전부 걷어내고 남은 자리를 가리킨다고 봤어요. 그래서 말과 개념은 무언가를 곧장 집는 게 아니라, 아닌 것을 지워서 뜻을 만든다는 겁니다.
친구에게 놀이터 사진에서 한 아이를 찾아보라고 한다고 해요.
"빨간 옷 아니야, 안경도 안 썼어, 미끄럼틀에 있는 애도 아니야."
이렇게 아닌 것을 하나씩 지워 나가면, 남는 한 명이 저절로 정해지죠.
다르마키르티가 말한 아포하(apoha, 遮詮)가 바로 이런 방식이에요.
산스크리트어 아포하는 '밀어냄, 배제'라는 뜻이고, 한자로는 가로막을 차(遮)에 설명할 전(詮)을 써서 遮詮, 곧 '지워서 가리키기'라고 옮겨요.
6세기에서 7세기 무렵 인도의 불교 철학자 다르마키르티(법칭)는 앞선 학자 디그나가(진나)의 《집량론》을 이어받아 이 생각을 더 촘촘하게 다듬었어요.
핵심은 이래요.
우리가 '소'라고 말할 때, 세상 어딘가에 모든 소가 함께 나눠 가진 '소다움'이라는 알맹이가 따로 떠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소 아닌 것'을 전부 밀어내고 남은 것을 '소'라고 부를 뿐이라는 거죠.
이름표는 있는 것을 집는 게 아니라, 아닌 것을 걷어내며 만들어져요.
다르마키르티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낱낱의 개별자뿐이라고 봤어요.
저 외양간의 이 소, 옆집의 저 소는 저마다 다른 진짜예요.
그런데 '소 일반', '소라는 보편'은 어디에도 실제로 없는 허구라고 봤죠.
니야야 학파는 모든 소에 깃든 공통 본질이 진짜로 있다고 주장했는데, 다르마키르티는 그런 보편은 아무 힘도 부리지 못하니 있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어요.
그러면 곤란한 물음이 생겨요.
공통 알맹이가 없다면, 서로 다른 소들을 어떻게 다 '소'라는 한 낱말로 묶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이 아포하예요.
소들이 무언가를 함께 지녀서가 아니라, '소 아닌 것'—말, 개, 돌, 나무—을 다 함께 밀어낸다는 점에서만 그것들이 한 무리로 묶인다는 거예요.
묶어 주는 건 안에 있는 공통점이 아니라, 함께 배제되는 바깥이에요.
이 발상 덕분에 다르마키르티는 '보편은 없다'고 하면서도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어요.
보통 우리는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이건 이거야" 하고 곧바로 집어 줘요.
있는 특징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이죠.
아포하는 반대로 "이건 저것이 아니야"를 쌓아 뜻을 세워요.
둘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방식 | 설명하는 법 | 예시 |
|---|---|---|
| 곧장 가리키기 | 있는 특징을 직접 집음 | "소는 이러이러한 것이다" |
| 遮詮(아포하) | 아닌 것을 지워 남김 | "소는 소 아닌 것이 아니다" |
얼핏 말장난 같지만 뜻이 깊어요.
다르마키르티에게 개념과 언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는 거울이 아니에요.
낱낱이 다른 것들 사이에서 우리 마음이 편의를 위해 그어 놓은 경계선에 가깝죠.
'소'라는 칸은 소 아닌 것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생긴, 마음속의 울타리예요.
세상에 울타리가 원래 박혀 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친 거고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
"소 아닌 것을 배제한다면, 결국 '소'를 미리 알아야 하니 빙빙 도는 것 아닌가요?"
좋은 질문이에요.
하지만 아포하는 머릿속으로 정의를 먼저 세우는 절차가 아니에요.
우리가 소를 보고 젖을 짜고 밭을 갈며 살아온 경험이, 소 아닌 것들과 저절로 선을 긋게 만든 결과에 가깝죠.
배제는 논리의 순서가 아니라 삶에서 자라난 습관이에요.
또 하나.
아포하는 "소는 없다"는 허무한 말이 아니에요.
눈앞의 이 소 한 마리는 분명히 진짜예요.
다만 그 여러 마리를 하나로 묶는 '소라는 이름표'가 실재가 아니라 배제로 만든 도구라는 뜻이죠.
진짜 개별자와 마음이 만든 이름표를 구별하는 것, 그게 이 이론의 핵심이에요.
아포하는 천사백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아요.
요즘 컴퓨터가 사진 속 고양이를 알아볼 때도, 고양이의 '본질'을 아는 게 아니라 고양이 아닌 수많은 사진과 갈라내는 선을 학습해요.
배제로 범주를 만드는 셈이죠.
우리가 '착한 사람', '우리 편' 같은 말을 쓸 때도 은근히 '그렇지 않은 쪽'을 밀어내며 뜻을 세운다는 걸 떠올리면, 말이 세상을 그대로 담기보다 잘라 나눈다는 다르마키르티의 통찰이 새삼 와닿아요.
다르마키르티의 아포하(apoha, 遮詮)는 '배제로 가리키기'예요.
모든 소가 나눠 가진 공통 실체는 없고, 실재하는 건 낱낱의 개별자뿐이에요.
그래서 '소'라는 말은 있는 알맹이를 집는 게 아니라, 소 아닌 것을 밀어내고 남은 자리를 가리켜요.
개념과 언어는 세상의 복사가 아니라, 마음이 아닌 것을 지워 그은 울타리라는 것—이 한 가지만 쥐고 가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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