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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물불천(物不遷)은 세상 모든 것이 쉼 없이 흐르는 듯 보여도 그 참된 성질(眞性)은 움직이지 않아 오고 감이 없다는 승조의 주장이에요. 지금의 것은 지금에, 지난 것은 지난 그때에 머물러 서로 옮겨 가지 않기 때문에, 겉의 움직임과 속의 고요함이 사실은 한 몸이라는 이야기예요.
"강물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른다"는 말처럼,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한다고 믿어요.
그런데 승조라는 옛 스님은 정반대를 말했어요.
사물은 옮겨 가지 않는다고요.
이게 바로 물불천(物不遷)이에요.
글자 그대로 '물(物), 곧 사물이 옮겨 가지(遷) 않는다(不)'는 뜻이지요.
《물불천론(物不遷論)》의 핵심은 이래요.
사물이 겉으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참된 성질(眞性)은 부동(不動)하여 오고 감이 없다는 거예요.
승조(僧肇, 384년~414년)는 구마라집 문하에서 '공(空)을 이해함이 제일'이라는 뜻으로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불린 중국 불교 철학자인데,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이 짧은 글에서 '변화'라는 우리의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었어요.
비유로 시작해 볼게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생각해 봐요.
우리는 흔히 "어제의 내가 오늘로 넘어와서 나이를 먹었다"고 여겨요.
마치 어제라는 방에 있던 물건이 오늘이라는 방으로 걸어 들어온 것처럼요.
그런데 승조는 이렇게 되물어요.
정말 그럴까요?
어제의 나는 어제에 있어요.
오늘로 옮겨 온 적이 없어요.
오늘의 나는 처음부터 오늘에 있고요.
어제의 것이 오늘에 오지 않았고, 오늘의 것이 어제에 있지도 않아요.
각각은 자기 자리에 딱 머물러 있을 뿐, 어디로도 이사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면 변화란 뭘까요?
승조가 보기에 그것은 서로 다른 순간들이 마치 릴레이 주자처럼 자기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우리 마음이 '하나가 움직여 갔다'고 이어 붙여 착각한 것이에요.
필름의 낱장들은 저마다 멈춰 있는데, 빠르게 넘기면 인물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하지요.
실제로 옮겨 간 것은 없어요.
여기서 승조의 유명한 표현이 나와요.
즉동이정(卽動而靜), '움직임에 나아가 곧 고요하다'는 뜻이에요.
움직임을 없애고 나서야 고요가 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움직이는 자리에 이미 고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생각이 있어요.
하나는 "모든 게 흘러가 버리니 붙잡을 게 없다"는 허무한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변하지 않는 딱딱한 실체가 어딘가 숨어 있다"는 집착이에요.
승조는 이 둘을 함께 넘어서려 했어요.
| 흔한 생각 | 승조의 물불천 |
|---|---|
| 사물이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간다 | 각각은 제자리에 머물 뿐 옮겨 가지 않는다 |
| 움직임과 고요는 반대다 | 움직이는 그 자리가 곧 고요하다(즉동이정) |
| 변하니 허무하거나, 안 변하니 실체가 있다 | 어느 쪽도 아닌 중도로 본다 |
승조는 유(有)만 붙잡거나 무(無)만 붙잡는 앞선 학파들을 비판하고,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간 사람이에요.
물불천도 그 큰 흐름 안에 있어요.
사물이 옮겨 가지 않는다는 말은 곧, 옮겨 갈 만한 고정된 알맹이가 애초에 없다는 통찰과 맞닿아 있거든요.
오해하기 쉬운 대목이 있어요.
"사물이 옮겨 가지 않는다"니까 세상이 얼음처럼 꽝 멈춰 있다는 뜻일까요?
아니에요.
승조는 눈앞의 변화를 부정하지 않아요.
꽃은 피고 지고, 아이는 자라지요.
그 겉모습을 없던 일로 만들자는 게 아니에요.
그가 겨눈 것은 우리 머릿속의 한 가지 습관이에요.
'무언가 하나가 시간을 타고 저쪽으로 넘어갔다'는 그림 말이에요.
겉으로는 분주히 흐르지만, 그 참된 성질에서 보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변화 한가운데에서도 마음이 흔들려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움직임을 지우는 게 아니라, 움직임을 보는 눈을 바꾸는 이야기예요.
참고로 승조가 처형 직전 게송을 남겼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만, 사료는 그가 414년에 자연사했다고 전하고 학계는 그 처형 이야기를 후대의 지어낸 것으로 봐요.
사람의 드라마보다 글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 물불천을 이해하는 데는 더 좋아요.
지나간 일을 붙들고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마음을 떠올려 봐요.
물불천의 눈으로 보면, 지난 것은 지난 그때에 이미 머물러 있어요.
지금으로 옮겨 와 나를 붙잡고 있는 게 아니에요.
1600년쯤 전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한 스님의 짧은 글이 오늘까지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흐른다는 상식 하나를 뒤집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변화에 덜 휘둘리며 지금 이 자리에 조금 더 단단히 설 수 있으니까요.
물불천(物不遷)은 '사물은 옮겨 가지 않는다'는 승조의 사상이에요.
세상은 쉼 없이 흐르는 듯 보이지만, 각각의 것은 제자리에 머물 뿐 어디로도 이사하지 않으며, 그래서 겉의 움직임과 속의 고요가 한 몸이라는 즉동이정(卽動而靜)이 핵심이에요.
이는 세상이 멈춰 있다는 주장이 아니라, '하나가 시간을 넘어 옮겨 갔다'는 우리의 착각을 짚는 말이에요.
오늘 지난 일에 끌려다닐 때, 지난 것은 지난 그때에 머문다는 이 한마디를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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