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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성인유정(聖人有情)은 훌륭한 성인에게도 기쁨과 슬픔 같은 감정이 분명히 있지만, 그 감정에 끌려다니거나 매이지 않는다는 왕필의 주장이에요. 감정이 없어서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거예요.
좋아하는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 다시 웃으며 저녁을 고르잖아요.
슬픔을 진짜로 느꼈지만, 그 슬픔이 하루 종일 나를 붙잡아 두지는 않았어요.
왕필이 말한 '성인의 감정'이 딱 이런 모습이에요.
왕필(王弼, 226~249년)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아주 젊은 학자예요.
스물세 살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노자 『도덕경』과 『주역』에 붙인 주석이 후대에 크게 영향을 끼쳤어요.
그가 남긴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성인유정(聖人有情)', 곧 '성인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서 성인(聖人)은 인격과 지혜가 최고 경지에 이른 사람, 공자 같은 이상적 인간을 가리켜요.
이 주장은 혼자 나온 게 아니라 반박으로 나왔어요.
당시 하안(何晏)이라는 유명한 학자가 이렇게 말했거든요.
"성인에게는 기쁨도 노여움도 슬픔도 즐거움도 없다."
성인쯤 되면 감정이 아예 사라져서 마음이 늘 잔잔한 물 같다는 거예요.
감정을 마음의 약점으로 보고, 완벽한 사람은 그 약점이 없다고 본 셈이죠.
왕필은 여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성인이라고 감정이 없어질 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의 말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이래요.
神明茂,所以能體沖和以通無;五情同,故不能無哀樂以應物。然則聖人之情,應物而無累於物者也。
풀이하면 이런 뜻이에요.
"성인은 신명(神明), 곧 정신의 밝음이 남달리 뛰어나서 조화로운 이치를 깨우쳐 근원에 통할 수 있다. 하지만 다섯 가지 감정(五情, 오정)은 보통 사람과 똑같아서, 슬픔과 기쁨 없이 세상일에 응할 수는 없다. 그러니 성인의 감정이란 사물에 응하되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지혜는 남보다 뛰어나지만 감정은 우리와 똑같다는 게 핵심이에요.
가장 중요한 대목이 '응물이무루어물(應物而無累於物)'이에요.
'응물'은 사물이나 상황에 반응한다는 뜻이고, '무루'는 얽매이거나 짓눌리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즉 반응은 하되 매이지는 않는다는 거죠.
예를 들어 볼게요.
친구가 아프면 성인도 마음이 아파요.
좋은 일이 생기면 성인도 기뻐해요.
감정을 억지로 참거나 없애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슬픔에 사로잡혀 판단이 흐려지거나 기쁨에 취해 우쭐해지지 않아요.
감정이 왔다가 제자리로 흘러가게 두는 거예요.
왕필은 이 대목에서 하안 쪽 생각의 허점을 콕 집어요.
"지금 얽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곧 다시는 사물에 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今以其無累,便謂不復應物,失之多矣)."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을 '아예 감정이 없다'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흔들리지 않는 것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이 둘은 이름이 비슷해서 자주 뒤섞여요.
왕필을 '성인은 감정이 없다고 본 사람'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정반대예요.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구분 | 하안의 입장 | 왕필의 입장 |
|---|---|---|
| 성인에게 감정이 있나 | 없다 (聖人無情) | 있다 (聖人有情) |
| 감정을 보는 눈 | 없애야 할 약점 | 누구나 지닌 자연스러움 |
| 흔들리지 않는 이유 | 감정 자체가 없어서 | 감정에 얽매이지 않아서 |
| 성인과 보통 사람 | 감정에서 아예 다름 | 지혜는 다르나 감정은 같음 |
한마디로 하안은 '감정을 빼서 완벽해진다'고 봤고, 왕필은 '감정을 지니고도 휘둘리지 않아서 완벽하다'고 본 거예요.
감정을 인간에게서 떼어내지 않았다는 점이 왕필 생각의 매력이에요.
성인유정은 딱딱한 옛 논쟁 같지만 사실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예요.
우리는 흔히 '멋진 어른은 화도 안 내고 눈물도 안 흘린다'고 상상하곤 해요.
감정을 참는 게 성숙이라고 여기기도 하고요.
왕필은 그 생각에 다른 길을 보여줘요.
슬플 때 슬퍼하고 기쁠 때 기뻐하되, 그 감정이 나를 오래 붙잡아 두지 않게 하는 것.
감정을 지우는 게 아니라 감정과 잘 헤어지는 것.
왕필이 그린 성인의 모습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느끼면서도 그 다음 걸음을 가볍게 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성인유정은 '성인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왕필의 주장이에요.
하안이 성인은 감정이 없다고 하자, 왕필은 지혜는 뛰어나도 다섯 가지 감정은 보통 사람과 같다고 반박했어요.
다만 성인은 감정에 반응하되 얽매이지 않는다(應物而無累於物)는 점이 달라요.
그러니 '왕필은 성인이 감정 없다고 본 사람'으로 기억하면 정반대로 아는 거예요.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감정에 매이지 않는 것, 이 한 줄만 기억해도 성인유정을 제대로 잡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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