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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허실(虛實)은 적의 단단하고 꽉 찬 곳(實)은 피하고, 비어 있거나 약한 곳(虛)을 골라 치는 원리예요. 동시에 내 편의 허실은 감춰서 적이 헛다리를 짚게 만드는 것까지 포함해요.
피구를 떠올려 볼게요.
상대편에 사람이 잔뜩 몰려 있는 쪽으로 공을 던지면 금방 잡혀요.
대신 아무도 없는 텅 빈 구석으로 던지면 점수를 얻기 쉽죠.
손빈이 말한 허실이 딱 이거예요.
여기서 실(實)은 꽉 찬 곳, 강한 곳, 방비가 튼튼한 곳이에요.
허(虛)는 비어 있는 곳, 약한 곳, 방심하고 있는 곳이고요.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힘이 더 센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빈틈을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에요.
손빈은 이 생각을 전쟁 전체를 움직이는 원리로 끌어올렸어요.
손빈(孫臏, 기원전 382년부터 316년까지)은 전국 시대 제나라의 군사(軍師)로, 《손자병법》을 쓴 손무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사람이에요.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고도 병법서 《손빈병법(孫臏兵法)》을 남겼고, 그 안에 담긴 핵심 원칙 하나가 바로 허실이에요.
가장 유명한 예가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다'는 전략이에요.
기원전 354년, 위나라가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했어요.
조나라가 제나라에 도와 달라고 하자, 보통이라면 한단으로 곧장 달려가 위나라 군대와 정면으로 부딪쳤겠죠.
그런데 손빈은 반대로 움직였어요.
위나라의 주력군이 전부 한단에 나가 있으니, 정작 위나라 수도 대량(大梁)은 텅 비어 있었거든요.
손빈은 그 빈 곳, 곧 허(虛)를 곧장 찔렀어요.
자기 나라 수도가 공격당하자 위나라 군대는 한단 포위를 풀고 허둥지둥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지쳐서 돌아오는 길목인 계릉(桂陵)에서 매복에 걸려 크게 졌어요.
강한 곳(한단의 위나라 대군)을 피하고 빈 곳(수도 대량)을 친 거예요.
손빈의 군사사상에는 '필공불수(必攻不守)', 반드시 공격하고 지키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는데, 허실은 그 공격을 어디에 꽂을지 정해 주는 눈이었어요.
허실에는 한 겹이 더 있어요.
내 편의 허실을 감춰서 적을 속이는 거예요.
기원전 342년 마릉 전투에서 손빈은 옛 동문이자 원수인 방연과 다시 맞붙었어요.
손빈은 감조지계(減竈之計)를 썼어요.
감조는 '아궁이를 줄인다'는 뜻이에요.
옛날 군대는 야영할 때 밥을 지으려고 흙 아궁이를 팠는데, 아궁이 수를 세면 대략 병력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어요.
손빈은 일부러 하루하루 아궁이 수를 줄여 나갔어요.
첫날은 십만 명 분, 다음 날은 오만 명 분, 그다음은 삼만 명 분처럼요.
방연은 이걸 보고 '제나라 병사들이 겁먹고 자꾸 도망쳐 숫자가 줄고 있구나' 하고 착각했어요.
사실 제나라 군대는 그대로 강했는데(實), 겉으로는 텅 비고 약한 척(虛) 꾸민 거예요.
방연은 그 헛것을 믿고 날쌘 기병만 이끌고 무리하게 쫓아왔어요.
손빈은 좁은 길목 마릉에 궁수 일만 명을 매복시켜 놓고 기다렸죠.
방연은 결국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내 실(實)을 허(虛)로 위장한 속임수가 승부를 갈랐어요.
손빈이 제나라에 처음 왔을 때 있었던 경마 일화도 허실의 축소판이에요.
장군 전기가 왕과 말 세 마리씩 세 판을 겨루는데, 등급이 상·중·하로 나뉘어 있었어요.
손빈은 이렇게 짜라고 했어요.
내 가장 약한 하등말을 상대의 상등말과 붙여 한 판은 일부러 내주고, 내 상등말로 상대 중등말을, 내 중등말로 상대 하등말을 이기는 거예요.
한 판을 버리는 대신 나머지 두 판을 확실히 이겨 3판 중 2판, 최종 승리를 가져왔어요.
이길 수 없는 곳(상대의 實)에는 힘을 아끼고, 이길 수 있는 곳(상대의 虛)에 내 힘을 몰아준 거죠.
전쟁이든 놀이든, 가진 힘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것이 허실의 핵심이에요.
허실은 꼭 전쟁에만 쓰는 말이 아니에요.
시험공부를 할 때 이미 잘 아는 부분(實)만 붙잡고 있으면 점수가 오르지 않아요.
내가 약한 부분, 자꾸 틀리는 빈 곳(虛)을 찾아 그곳에 시간을 쏟는 편이 훨씬 낫죠.
발표나 운동 경기에서도 상대의 강점과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 아직 비어 있는 틈을 먼저 보는 눈이 이기는 눈이에요.
손빈이 남긴 건 '무조건 세게 밀어붙여라'가 아니라 '어디가 비었는지 먼저 보라'는 태도예요.
힘이 부족해도 빈 곳을 정확히 고르면 이길 수 있다는 것, 그게 다리를 잃고도 병법가로 남은 손빈이 알려 준 지혜예요.
허실(虛實)은 적의 강하고 꽉 찬 곳(實)은 피하고 약하고 빈 곳(虛)을 친다는 원리예요.
손빈은 위위구조로 텅 빈 적의 수도를 찔렀고, 감조지계로 내 강함을 약한 척 감춰 방연을 속였으며, 경마에서는 이길 곳에 힘을 몰아 이겼어요.
세 이야기 모두 '힘의 크기'가 아니라 '힘을 쓸 자리'를 정하는 것이 승부를 가른다는 걸 보여 줘요.
오늘 내가 무언가를 겨룬다면, 상대의 단단한 곳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곳부터 찾아보는 것, 그것이 손빈의 허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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