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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모크샤(mokṣa)는 영혼에 먼지처럼 달라붙은 업(業)을 남김없이 털어내, 태어나고 죽는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를 뜻해요. 마하비라는 고행으로 옛 업을 태우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업이 바닥나 영혼이 저절로 풀려난다고 가르쳤어요.
마하비라는 자이나교의 스물네 번째이자 마지막 티르탕카라, 곧 최고 스승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에요.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무렵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 살았다고 전해지죠.
오늘은 그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딱 하나, '모크샤'만 이야기해 볼게요.
무거운 겨울옷이 물에 흠뻑 젖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옷 자체는 원래 가벼운데, 물을 잔뜩 먹으면 몸이 축 처지고 걷기도 힘들어져요.
마하비라의 세계관에서 우리 영혼도 이와 비슷해요.
영혼은 본래 맑고 가벼운데, 살면서 쌓인 '업'이 먼지나 물처럼 달라붙어 무거워진다고 봤어요.
그 무게 때문에 영혼은 죽어도 끝나지 않고 다시 태어나고, 또 죽고, 또 태어나기를 끝없이 반복해요.
모크샤는 바로 이 젖은 옷을 완전히 말리고 먼지를 다 털어내는 일이에요.
업이 하나도 남지 않으면 영혼은 원래의 가벼움을 되찾고, 다시 태어나는 굴레에서 영영 벗어나죠.
이 완전한 자유가 자이나교가 말하는 궁극의 목표예요.
불교 문헌인 《중아함경·니건경(尼乾經)》에는 마하비라를 가리키는 이름 '니건다야제자(尼乾陀若提子)'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어요.
여기 따르면 그는 '숙작인론', 곧 지금 겪는 일이 지난날의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폈고, 고행으로 옛 업을 소멸시키고 새 업을 더하지 않으면 업이 다해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해요.
흥미롭게도 이 문헌은 그가 '업(業)' 대신 '단다(丹荼)'라는 말을 썼다고도 전해요.
핵심은 두 가지 작업이에요.
하나는 이미 쌓인 빚을 갚듯 옛 업을 태워 없애는 일, 다른 하나는 새 빚을 지지 않듯 새 업을 짓지 않는 일이죠.
한쪽만 해서는 안 돼요.
빚을 열심히 갚아도 계속 새로 빌리면 잔고가 줄지 않으니까요.
옛 업을 태우는 동시에 새 업의 유입을 막아야 비로소 장부가 0이 되고, 그 순간 영혼이 풀려나요.
마하비라 자신도 12년 반 동안 극심한 고행과 명상을 이어간 끝에 케발라 즈냐나(kevala jñāna), 곧 모든 것을 아는 완전한 앎에 이르렀다고 전해져요.
그렇다면 새 업을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하비라는 해탈을 위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큰 서약을 제시했어요.
각각은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니, 여기서는 이름만 훑어볼게요.
| 서약 | 뜻 |
|---|---|
| 아힘사(ahiṃsā) | 어떤 생명도 해치지 않기 |
| 사티야(satya) | 진실만 말하기 |
| 아스테야(asteya) | 남의 것을 훔치지 않기 |
| 브라흐마차리야(brahmacharya) | 욕망을 절제하기 |
|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 소유에 집착하지 않기 |
이 다섯을 지키는 삶은 새 업이 영혼에 달라붙는 통로를 하나씩 막는 일이에요.
여기에 고행을 더해 이미 쌓인 업을 태워 나가는 것이 모크샤로 가는 길이라고 본 거죠.
마하비라는 완전한 앎을 얻은 뒤 30년간 이 가르침을 설법했고, 마침내 비하르의 파바푸리에서 니르바나에 이르렀다고 전해져요.
이곳은 지금도 자이나교의 중요한 순례지랍니다.
마하비라는 남녀 평등을 가르쳤다고 전해지지만, 후대 자이나교는 여성의 해탈을 두고 두 갈래로 갈렸어요.
이건 모크샤가 실제로 누구에게 열려 있느냐를 놓고 벌어진 오래된 논쟁이에요.
| 종파 | 여성의 해탈에 대한 입장 |
|---|---|
| 디감바라 | 여성은 신체 조건상 완전한 고행과 해탈에 이를 수 없다고 봄 |
| 스베탐바라 | 남녀 모두 고행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봄 |
같은 스승을 따르면서도 '누가 옷 없이 끝까지 고행할 수 있는가'를 놓고 해석이 달라진 셈이에요.
모크샤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 수행의 문제였기에, 이런 현실적인 차이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어요.
모크샤는 영혼에 달라붙은 업을 남김없이 털어내, 다시 태어나는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예요.
마하비라는 고행으로 옛 업을 태우고 다섯 서약을 지켜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업이 바닥나 영혼이 저절로 풀려난다고 가르쳤어요.
젖은 옷을 말리고 새 물을 묻히지 않는 두 작업을 함께 해내는 것, 그것이 자이나교가 그린 해탈의 길이에요.
여성도 이 길을 갈 수 있는가를 두고 후대가 갈라졌다는 점까지 기억해 두면, 모크샤가 관념이 아니라 삶으로 밀고 나간 목표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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