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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경장(更張)은 거문고 줄을 다시 팽팽히 조이듯 늘어진 제도를 때맞춰 고쳐 쓰는 일이고, 무실(務實)은 현실에 쓸모없는 헛된 이론을 버리고 실제로 나라와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에 힘쓰는 태도예요. 이이는 이 둘을 한 몸으로 보고, 좋은 이론이라도 현실에 적용할 수 없으면 참된 학문이 아니라고 했어요.
거문고를 오래 켜면 줄이 조금씩 늘어나요.
그대로 두면 소리가 탁하고 음이 맞지 않죠.
이럴 때는 줄을 풀어 다시 팽팽하게 조여야 제 소리가 나요.
이렇게 늘어진 줄을 다시 조이는 일을 경장(更張)이라고 해요.
낡아버린 나라의 제도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이(1536년~1584년, 호는 율곡)는 조선의 성리학자예요.
그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나란히 말했어요.
하나는 때맞춰 제도를 고치는 경장이고, 다른 하나는 헛된 말 대신 실질에 힘쓰는 무실이에요.
이 글은 바로 이 두 가지 이야기예요.
나라가 세워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 처음엔 좋았던 법도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해요.
늘어진 거문고 줄처럼요.
이이가 보기에 당시 조선이 딱 그랬어요.
제도는 낡았는데 사람들은 '조상이 만든 법이니 그냥 두자'며 손대기를 무서워했어요.
그래서 이이는 34세이던 1569년, 선조 임금에게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려요.
정치를 어떻게 고칠지 열한 가지 조목으로 정리한 개혁 상소였어요.
뒤에는 《만언봉사(萬言封事)》 같은 긴 상소도 올려요.
잘못된 걸 알면서도 두려워 고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병들게 한다고 본 거예요.
경장은 '뒤엎자'가 아니라 '때맞춰 손보자'는 말에 가까워요.
무실은 '실(實)에 힘쓴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실은 '실제로 쓸모 있는 것'을 말해요.
이이는 학문의 원칙으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을 참된 학문으로 삼았어요.
아무리 그럴듯하고 훌륭한 이론이라도 현실에 쓸 수 없으면 공리공담(空理空談), 곧 알맹이 없는 빈말이라고 여겼어요.
요리책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부엌에서 밥 한 끼 못 지으면 소용없는 것과 비슷해요.
이이의 성리학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이라 평가받는 까닭이 여기 있어요.
그의 삶도 그랬어요.
1584년 세상을 떠났을 때 남긴 재산이라곤 서재를 채운 책과 부싯돌 몇 개뿐이었다고 해요.
말과 삶이 따로 놀지 않았던 셈이에요.
이이의 개혁 제안 가운데 자주 이야기되는 두 가지를 표로 정리해 볼게요.
| 제안 | 내용 | 결과 |
|---|---|---|
| 서얼허통론 | 전쟁에 공을 세우거나 군량을 낸 서얼에게 벼슬길을 열자 | 양반들의 반대로 좌절, 하지만 뒷날 서얼허통 확대의 물꼬가 됨 |
| 양병(군비 강화) | 나라의 군사를 미리 튼튼히 길러 침략에 대비하자 | 실현되지 못함, 뒷날 크게 회자됨 |
서얼(첩의 자식)은 능력이 있어도 벼슬길이 막혀 있었어요.
이이는 1583년, 공을 세운 서얼에게 벼슬을 열어 주자고 했어요.
당장은 양반들의 반대로 막혔지만, 뒷날 서얼에게도 길이 넓어지는 첫 물꼬가 되었어요.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도 유명해요.
이이가 임진왜란을 미리 내다보고 십만 군사를 기르자 했다고 널리 알려졌죠.
다만 이건 조심해서 봐야 해요.
이이의 현존 문집에는 '양병'이라는 말은 있어도 '십만'이라는 정확한 숫자는 나오지 않고, 오히려 군축을 주장한 상소도 있거든요.
그래서 '십만'이라는 숫자는 후대에 그를 높이는 과정에서 덧붙었을 가능성이 학계에서 제기돼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아직 논쟁 중인 이야기로 기억해 두면 좋아요.
경장은 늘어진 거문고 줄을 다시 조이듯 낡은 제도를 때맞춰 고치는 일이고, 무실은 헛된 말 대신 실제로 쓸모 있는 것에 힘쓰는 태도예요.
이이에게 이 둘은 따로가 아니었어요.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이론은 빈말이고, 방향 없는 개혁은 헛수고니까요.
서얼허통론처럼 당장은 막힌 제안도 있었지만, 그가 남긴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병'이라는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남아 있어요.
좋은 뜻이 실제로 통하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손보는 용기가 함께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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