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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퇴계는 사단은 이(理)가 발하고 칠정은 기(氣)가 발한다며 둘을 갈랐지만, 율곡은 마음이 움직이는 통로는 기 하나뿐이고 이는 그 위에 올라탈 뿐이라고 보아 이 이분법을 거부했어요.
이이(1536년~1584년)는 호가 율곡인 조선의 성리학자예요.
과거에 아홉 번 장원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렸죠.
이 글은 그가 스승뻘인 퇴계 이황의 학설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딱 그 이야기만 다룰게요.
먼저 낱말부터 볼게요.
사단(四端)은 남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처럼 '착한 마음의 실마리' 네 가지예요.
칠정(七情)은 기쁨·노여움·슬픔 같은, 우리가 느끼는 온갖 감정을 말하고요.
여기에 두 글자가 더 나와요.
이(理)는 세상 만물이 그래야 하는 '이치·법칙', 기(氣)는 그 이치를 실제로 움직이고 채우는 '재료·힘'이에요.
물이 흐르는 물길이 이라면, 실제로 콸콸 흐르는 물은 기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논쟁의 출발은 퇴계 이황이었어요.
퇴계는 착한 마음(사단)과 일반 감정(칠정)의 뿌리가 다르다고 봤어요.
사단은 이(理)가 발(發, 움직여 나옴)해서 생기고, 칠정은 기(氣)가 발해서 생긴다는 거예요.
이걸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곧 이와 기가 '번갈아' 발한다는 설이라고 불러요.
퇴계가 이렇게 나눈 데는 이유가 있어요.
착한 마음은 순수하고 귀하니까 그 뿌리를 순수한 이치(이) 쪽에 두고 싶었던 거죠.
감정은 흐트러지기 쉬우니 재료·힘(기) 쪽에 두고요.
착함과 욕심을 처음부터 다른 통로로 갈라 두면, 착한 마음을 지켜야 할 자리가 분명해 보이거든요.
율곡은 여기서 딱 멈춰 섰어요.
"이(理)가 스스로 발한다고요?"
그는 이와 기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떨어질 수 없고, 처음부터 함께 붙어 있다고 봤어요.
이는 물길 같은 '조리(條理)'일 뿐, 스스로 움직이는 힘이 없다는 거예요.
물길이 저절로 흐르지는 않잖아요.
흐르는 건 언제나 물(기)이고, 물길(이)은 그 흐름에 얹혀 방향만 잡아 줄 뿐이죠.
그래서 율곡은 발하는 것은 오직 기 하나이고, 이는 그 위에 올라탈 뿐이라고 정리해요.
통로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거예요.
그러면 퇴계처럼 사단은 이가 발한 것,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고 나누는 순간, 이가 마치 혼자 튀어나오는 것처럼 되어 버려요.
율곡이 보기엔 이건 이와 기를 억지로 떼어 놓은 셈이었어요.
다만 율곡도 이(理)를 가볍게 본 건 아니에요.
그는 벗 성혼에게 답한 편지 《답성호원(答成浩原)》에서 이렇게 적어요.
推本其所以然,則理是樞紐根柢,故不得不以理爲先 — 그 소이연(그러한 까닭)을 미루어 근본을 삼으면, 이가 관건이 되는 근본이므로 부득불 이를 우선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힘으로 움직이는 건 기지만,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까닭의 근본은 이라는 말이죠.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뿌리가 다른 둘로 봤지만, 율곡은 사단이 칠정 바깥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봤어요.
우리가 느끼는 온갖 감정(칠정) 가운데 순수하게 착한 쪽만 골라 부른 이름이 사단이라는 거죠.
감정이라는 큰 통 안에서, 그중 맑은 부분이 사단인 셈이에요.
두 사람 입장을 나란히 놓으면 이래요.
| 물음 | 퇴계 이황 | 율곡 이이 |
|---|---|---|
| 발하는 것 | 이도 발하고 기도 발한다 | 오직 기만 발한다 |
| 이(理)의 역할 | 스스로 움직여 사단을 냄 | 움직이지 않고 위에 올라탐 |
| 사단과 칠정 | 뿌리가 다른 둘 | 칠정 중 착한 부분이 사단 |
율곡이 이렇게 따진 데는 그의 학문 태도가 깔려 있어요.
그는 아무리 그럴듯한 이론도 현실에 들어맞지 않으면 헛된 말장난(공리공담)이라 여겼거든요.
마음이 실제로 움직이는 모습은 늘 이와 기가 붙어 있는데, 이론에서만 둘을 갈라놓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거예요.
여기서 오해 하나만 풀게요.
후대에 학파와 붕당이 갈리면서 퇴계와 율곡이 처음부터 앙숙이었던 것처럼 그려지곤 해요.
하지만 당대엔 그렇지 않았어요.
1558년, 스물세 살 율곡은 도산으로 쉰여덟의 퇴계를 찾아가 이틀을 머물며 학문을 논했고, 이후로도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서로 존중한 좋은 선후배 사이였죠.
비판은 사람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더 정확히 풀려는 진지한 대화였어요.
퇴계는 착한 마음과 감정을 지키려고 사단은 이가, 칠정은 기가 발한다며 통로를 둘로 나눴어요.
율곡은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고 발하는 힘은 기 하나뿐, 이는 그 위에 얹혀 방향을 줄 뿐이라며 그 이분법을 거부했죠.
그래서 그에게 사단은 칠정과 다른 뿌리가 아니라, 감정 가운데 맑고 착한 부분이었어요.
물은 언제나 물길을 따라 흐르지만 흐르는 건 어디까지나 물이라는 그림 하나만 기억하면, 이 논쟁의 핵심을 잡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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