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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상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작용하는 것은 오직 기(氣) 하나이고, 이(理)는 그 움직임에 올라타 방향과 이치를 줄 뿐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가 발할 때 따로 있고 기가 발할 때 따로 있다는 '두 갈래' 설명을 물리치고, 무언가 일어나는 길은 언제나 하나뿐이라고 본 거예요.
율곡 이이는 1536년부터 1584년까지 살았던 조선의 성리학자예요.
오늘날 5천원권 지폐 속 그 인물이죠.
그가 남긴 핵심 사상이 바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에요.
이름이 어렵죠?
한 글자씩 풀면 쉬워요.
기발(氣發)은 "기가 발한다", 즉 기가 실제로 움직이고 작용한다는 말이고, 이승(理乘)은 "이가 탄다", 즉 이가 그 움직임 위에 올라탄다는 말이에요.
일도(一途)는 "한 길", 오직 하나의 길이라는 뜻이죠.
이어 붙이면 "발하는 것은 기이고 이는 그 위에 올라타는데, 그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가 됩니다.
가장 쉬운 그림은 말과 기수예요.
달리는 건 말(기)이에요.
기수(이)는 스스로 달릴 수 없고 말 등에 올라타 방향만 잡아 주죠.
말 없이 기수 혼자 달릴 수 없고, 기수 없이 말만 아무렇게나 달려도 안 돼요.
세상 모든 일이 이렇게 '기가 달리고 이가 올라탄' 한 몸으로 일어난다는 게 이 이론의 핵심이에요.
율곡은 이(理)와 기(氣)를 이렇게 나눠 봤어요.
이는 우주의 본체(體)인 조리(條理), 곧 "이렇게 되어야 하는 이치·원리·설계"예요.
기는 그 이치를 실제 모습으로 구체화하는 작용(用), 곧 "실제로 굴러가는 재료와 힘"이고요.
설계도와 벽돌로 바꿔 볼까요.
집이 반듯하게 서는 원리(이)는 설계도에 담겨 있지만, 설계도가 스스로 집이 되지는 않아요.
벽돌과 나무(기)가 실제로 쌓여야 집이 서죠.
그런데 벽돌만 마구 쌓으면 무너져요.
설계도라는 이치가 그 위에 얹혀 있어야 반듯한 집이 됩니다.
중요한 건, 율곡이 이와 기 사이에 시간 순서도 공간 거리도 없다고 본 점이에요.
이가 먼저 있고 기가 나중에 생기는 게 아니라, 둘은 처음부터 동시에 함께 있어요.
설계도 따로, 집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설계도대로 서 있는 집' 하나로 존재하는 셈이죠.
그래서 이와 기는 눈으로 떼어 낼 수 있는 두 물건이 아니라, 한 사건을 이루는 두 측면이라고 이해하면 좋아요.
'한 길'이라는 말에는 당시 학계와의 논쟁이 숨어 있어요.
앞선 대학자 퇴계 이황은 이기호발설을 폈어요.
쉽게 말해 어떤 마음은 이가 발해서 생기고, 어떤 마음은 기가 발해서 생긴다는 '두 갈래' 설명이었죠.
율곡은 여기에 반대했어요.
이는 스스로 발할 수 없다고 봤거든요.
발하는(움직이는) 능력은 오직 기에게만 있어요.
그러니 이가 따로 발하고 기가 따로 발하는 두 길은 있을 수 없고, 언제나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타는' 한 길만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름도 일도(一途), 즉 '한 길'이 붙었습니다.
말과 기수로 다시 보면 이해가 쉬워요.
"어떨 땐 기수가 달리고 어떨 땐 말이 달린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달리는 건 늘 말이고, 기수는 늘 올라타 있을 뿐이에요.
율곡에게 세상일은 예외 없이 이 하나의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그렇다고 이가 하찮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근본이죠.
율곡은 성혼에게 보낸 편지 《답성호원(答成浩原)》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推本其所以然,則理是樞紐根柢,故不得不以理爲先 — 그 소이연(所以然), 곧 "그렇게 되는 까닭"을 미루어 근본을 삼으면, 이(理)가 관건이 되는 뿌리이므로 부득불 이(理)를 우선으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뜻일까요?
움직이는 힘은 기에게 있지만, "왜 하필 이런 모습으로 움직이는가"의 까닭을 캐 들어가면 결국 이라는 원리에 닿는다는 거예요.
말이 아무 데로나 달리지 않고 길을 따라 달리는 건 기수가 방향을 쥐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움직임'에서는 기가 먼저지만, '까닭과 근본'에서는 이가 먼저예요.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한 사건의 두 얼굴이랍니다.
율곡의 이 생각은 그저 관념 놀이가 아니었어요.
그는 아무리 훌륭한 이론도 현실에 쓸 수 없으면 공리공담(빈말)이라 여겼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만 참된 학문이라고 못 박았어요.
기발이승일도설도 그 태도와 이어져 있어요.
이치(이)와 현실(기)을 따로 떼어 놓지 않고 한 몸으로 봤으니까요.
원리는 반드시 현실 속에서 실제로 굴러가야 하고, 현실은 반드시 올바른 이치를 얹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좋은 설계도가 종이 위에만 남아 있으면 소용없고, 벽돌만 쌓으면 무너지는 것과 같아요.
머릿속 이상과 눈앞 현실을 하나로 붙여 보려는 자세, 그게 율곡 사상의 밑바탕이에요.
기발이승일도설은 이름만 어렵지 속뜻은 단순해요.
실제로 움직이는 건 기 하나이고, 이는 그 위에 올라타 이치와 방향을 줄 뿐이며, 그 길은 언제나 하나라는 겁니다.
말은 달리고 기수는 올라타듯, 이와 기는 처음부터 한 몸으로 붙어 있어요.
움직임의 주인공은 기지만 그 까닭의 뿌리는 이라는 것, 그리고 이치와 현실은 결코 따로 놀 수 없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하면 율곡의 생각을 손에 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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