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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용운에게 '님'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부처와 잃어버린 나라와 진리처럼 지금 곁에 없지만 가장 간절히 그리워하는 대상을 두루 가리켜요. 그 빈자리를 시로 노래한 것이 바로 부재의 미학이에요.

친했던 친구가 어느 날 멀리 전학을 갔다고 해 볼게요.
옆자리가 텅 비고 나서야 그 친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또렷해지죠.
한용운이라는 사람이 평생 붙들었던 마음이 딱 이거예요.
그는 1926년에 펴낸 시집 '님의 침묵'을 이렇게 시작해요.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떠난 사람을 부르는 이 한 문장 안에, 그가 평생 던진 질문이 담겨 있어요.
이 글에서는 그 '님'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왜 떠난 빈자리를 그렇게 아름답게 그렸는지 함께 풀어 볼게요.
한용운은 1879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사람이에요.
호는 만해라고 해요.
한 사람이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했는데, 불교를 공부하는 스님이면서, 시를 쓰는 시인이면서,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가였어요.
그가 살던 때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시절이었어요.
1919년 삼일운동 때 독립을 선언하는 글에 이름을 올린 민족 대표 서른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한용운이에요.
이 일로 감옥에도 갇혔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스님의 고요함과 독립운동가의 뜨거움을 한 몸에 지닌 보기 드문 사람이었죠.
한용운이 1913년에 펴낸 책이 '조선불교유신론'이에요.
이름이 어렵지만 뜻은 단순해요. '유신'은 낡은 것을 새롭게 고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불교를 시대에 맞게 바꾸자고 외친 책이에요.
그가 보기에 당시 불교는 깊은 산속에만 숨어 있었어요.
그래서 절이 사람들 곁으로 내려와야 하고, 어려운 가르침을 보통 사람도 알아듣게 쉽게 풀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에게 불교 개혁과 민족 독립은 따로가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정신이 깨어나야 나라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보통 '님'이라고 하면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려요.
그런데 한용운의 '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같은 글자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여러 얼굴로 보이도록 일부러 그렇게 썼어요.
그가 가리킨 '님'을 정리하면 이래요.
| 님으로 읽을 수 있는 것 | 그리워한 이유 |
|---|---|
| 부처 | 깨달음을 향한 마음 |
| 빼앗긴 나라 | 되찾고 싶은 조국 |
| 진리 | 끝까지 따르고 싶은 참된 것 |
그래서 '님의 침묵'을 사랑 시로 읽어도 맞고, 나라를 그리는 시로 읽어도 맞아요.
한 편의 시가 여러 마음을 동시에 안고 있는 거예요.

'부재'는 곁에 없다는 말이에요.
부재의 미학은 없는 것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뜻이고요.
앞에서 말한 빈 책상을 다시 떠올려 보세요.
친구가 옆에 있을 땐 당연했는데, 떠나고 나니 더 간절해지죠.
한용운은 이 마음을 시로 붙들었어요.
님이 떠났기 때문에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떠났기 때문에 더 또렷이 사랑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떠남을 끝이라고 보지 않았어요. '님의 침묵'에는 이런 마음이 흘러요.
만날 때 헤어질 것을 걱정하듯이, 헤어질 때도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고요.
빈자리를 다시 만날 약속으로 바꿔 읽은 거예요.
그것이 부재의 미학이에요.

우리도 살면서 소중한 것을 잃거나 떠나보내요.
그럴 때 빈자리만 보며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한용운은 다른 길을 보여 줘요.
없는 것을 향한 그리움이 오히려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는 나라가 없던 시절에도 다시 만날 날을 믿으며 시를 썼어요.
지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 그것이 그가 백 년 전 글로 우리에게 건넨 선물이에요.
한용운은 스님이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불교를 새롭게 고치자는 '조선불교유신론'과 시집 '님의 침묵'을 남겼어요.
그가 부른 '님'은 한 사람이 아니라 부처와 나라와 진리처럼 곁에 없지만 간절한 모든 것이었어요.
떠난 빈자리를 다시 만날 약속으로 바꿔 읽은 그 마음을, 우리는 부재의 미학이라고 불러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곧 힘이 된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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