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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랍 깊은 곳 상비약 상자를 열었더니 약마다 유효기간이 한참 지나 있어요. 분명 좋은 약인데, 너무 오래돼서 이제 먹어도 잘 안 들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지금부터 약 800년 전, 일본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살았어요. "부처님 가르침이 이제 효력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요.
그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말법 시대예요. 한자를 풀면 끝 말에 법 법, 가르침의 끝물이라는 뜻이죠. 부처가 세상을 떠난 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르침의 힘이 점점 약해진다는 생각이에요.

불교에는 시간을 세 토막으로 나눠 보는 오래된 생각이 있어요. 부처가 막 떠난 직후는 가르침도, 수행도, 깨달음도 다 살아 있는 시대예요. 그다음은 가르침과 수행은 남았지만 정작 깨닫는 사람은 드물어진 시대고요. 마지막이 바로 말법, 가르침의 껍데기만 남고 아무도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시대예요.
당시 일본에서는 1052년쯤부터 이 말법 시대에 들어섰다고 믿었어요. 마침 무사들끼리 전쟁이 잦고 지진과 큰불, 굶주림과 전염병이 잇따르니, 사람들은 "정말 세상이 끝물에 들어섰구나" 하고 피부로 느꼈죠.
니치렌은 1222년부터 1282년까지, 바로 그 불안한 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승려예요. 가난한 어부 집안에서 태어나 열두 살 무렵 절에 들어갔고, 이후 스무 해 넘게 불교 경전을 파고들었어요. 일본 불교의 큰 중심이던 히에이산에서도 오래 공부했고요.
그가 붙든 질문은 뜻밖에 단순했어요. "이 끝물 같은 시대에, 사람을 진짜로 구할 수 있는 가르침은 도대체 무엇인가?" 수많은 경전을 읽고 또 견줘 본 끝에 그가 내린 답은 딱 하나, 법화경이었어요.

그의 생각을 일상의 장면으로 옮겨 볼게요. 집 안 방마다 열쇠가 다른데, 급할 때 어떤 열쇠가 어느 문에 맞는지 몰라 허둥댄 적 있죠? 니치렌은 말법 시대 사람들이 딱 그 처지라고 봤어요. 불교 경전은 너무 많고 수행법도 제각각이라, 보통 사람은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모든 문을 여는 마스터키 하나를 내밀어요. 법화경의 핵심을 일곱 글자에 담은 구절, "나무묘법연화경"을 소리 내어 외우는 거예요. 어려운 한문을 다 읽지 못해도, 심지어 글을 모르는 사람도, 이 한 구절을 마음 담아 부르면 부처의 구원에 가닿을 수 있다고 했죠. 1253년, 서른두 살의 그는 이 구절을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외칩니다. 복잡하던 수행을 누구나 할 수 있는 한 가지로 줄인 셈이에요.
니치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1260년, 그는 '입정안국론'이라는 글을 막부, 그러니까 당시 일본을 다스리던 무사 정권에 올려요. 내용은 이래요. "나라가 잘못된 가르침에 기대고 있어서 재난이 그치지 않는다. 법화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에서 반란이 일고 밖에서 외적이 쳐들어올 것이다."
이건 다른 종파와 권력자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말이었어요. 대가는 혹독했죠. 그는 두 번이나 외딴섬과 변방으로 귀양을 갔고, 1271년에는 형장에서 목이 베이기 직전까지 몰렸어요. 그래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자신이야말로 말법 시대에 사람들을 구하라고 보내진 사람이라 믿었거든요. '말법시대의 구원자'라는 말은 바로 여기서 나와요.
게다가 그가 경고한 외적의 침입은 실제로 들이닥쳐요. 1274년과 1281년, 몽골이 두 차례 일본으로 쳐들어온 거예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죠.

니치렌의 생각이 특별한 건, 구원을 멀고 어려운 자리에서 가깝고 쉬운 자리로 끌어내렸다는 점이에요. 깊은 산속에서 수십 년 닦아야 닿는 깨달음이 아니라, 글 모르는 농부도 입으로 부를 수 있는 한 구절로요. 끝물 같은 시대일수록 구원은 더 단순하고, 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가 시작한 흐름은 일본에서 큰 종파로 자랐고, 8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한 구절을 외우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어요.

니치렌은 부처의 가르침마저 힘을 잃는다는 말법 시대를 살며, 그 시대에 사람을 구할 단 하나의 길을 법화경에서 찾은 일본의 승려예요. 그는 어려운 수행 대신 누구나 외울 수 있는 한 구절을 내밀었고, 그 믿음을 지키느라 귀양과 죽을 고비를 치렀죠. 가르침이 다 닳아 버린 것 같은 시대일수록 구원은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가까이 와야 한다는 것, 그 한 가지만 기억해도 니치렌이라는 사람이 오래 남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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