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가장 아끼던 컵을 떨어뜨려 본 적 있나요? 바닥에서 쨍그랑 소리가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요. "아, 하필 저걸!" 하고 한참을 속상해하죠. 누가 건드렸냐며 짜증이 나기도 하고요.
이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해요. "컵이 깨져서 괴롭다." 괴로움의 원인이 깨진 컵에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똑같이 컵이 깨져도 어떤 사람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금방 털어내요. 같은 일인데 누구는 오래 괴롭고 누구는 안 괴롭다면, 괴로움은 컵에서만 오는 게 아닐지도 몰라요.
이 질문을 평생 파고든 사람이 있어요. 태국 동북부 시골 숲에서 수행한 스님, 아잔 차예요. 1918년부터 1992년까지 살았으니 일흔넷까지 산 셈이고, '아잔'은 태국말로 스승이라는 뜻이에요.
그는 화려한 도시 절이 아니라 모기와 뱀이 가득한 숲에 작은 수행처를 짓고 살았어요. 가진 거라곤 옷 한 벌과 밥그릇 하나뿐이었죠. 거기서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수행, 위빠사나를 했어요. 위빠사나는 어렵게 들리지만, 쉽게 말하면 '내 마음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기'예요. 화가 날 때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 그게 시작이에요.
신기한 건, 이 시골 스님에게 서양에서 온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는 거예요. 그 제자들이 나중에 미국과 유럽으로 돌아가 그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숲속 스님의 이야기가 전 세계로 번졌어요. 그는 어려운 경전 용어 대신 컵, 물, 나무, 흐르는 강물 같은 누구나 아는 비유로 말한 걸로 유명해요.

아잔 차의 대답은 이래요. 괴로움은 컵이 깨진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에서 온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꽉 붙잡고 있어요. "이 컵은 안 깨져야 해", "이 친구는 변하면 안 돼", "내일 소풍날 날씨는 맑아야 해." 그런데 세상은 내 바람대로만 흘러가지 않잖아요. 컵은 언젠가 깨지고, 사람은 변하고, 날씨는 제멋대로예요.
내 바람과 실제 현실 사이가 벌어질 때, 바로 그 틈에서 괴로움이 생겨요. 손에 모래를 꽉 쥐면 오히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아픈 것처럼요. 깨진 컵이 괴로움을 준 게 아니라, "깨지면 안 되는데" 하고 움켜쥔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한 거예요.
아잔 차에게는 유리컵에 얽힌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손에 든 컵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어요. "나에게 이 컵은 이미 깨진 것이다."
무슨 뜻일까요? 컵은 지금 멀쩡한데도요. 그의 말은 이래요. 유리컵은 원래 깨지기 쉬운 물건이에요. 선반에서 떨어지거나 바람에 넘어지면 깨지는 게 당연하죠. 그러니 "언젠가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받아들이면, 정말 깨지는 날이 와도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담담할 수 있어요.
오히려 이렇게 미리 받아들이면, 컵이 멀쩡한 지금 이 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물을 마실 때마다 "지금 쓸 수 있어서 고맙다"고요. 깨질 걸 알기에 더 아끼게 되는 거예요. 끝이 있다는 걸 알면 지금이 귀해지는 마음, 우리도 방학 마지막 날이면 평소보다 하루가 더 아까운 것과 비슷해요.

그렇다고 아잔 차가 "아무것도 사랑하지 말고 다 포기하라"고 한 건 아니에요. 그가 말한 건 '움켜쥔 손을 푸는 연습'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조금 놓으면 조금 편안해지고, 많이 놓으면 많이 편안해지고, 완전히 놓으면 완전히 편안해진다고요. 놓아버린다는 건 컵을 던져 버리는 게 아니에요. 컵을 잘 쓰되, "절대 안 깨져야 해"라는 집착만 살짝 내려놓는 거예요.
시험 점수도 그래요. 열심히 공부하되 "무조건 100점이어야 해"라고 꽉 쥐면, 한 문제만 틀려도 마음이 무너져요.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받아들이기로 하면, 같은 점수에도 훨씬 덜 괴로워요. 할 일은 똑같이 하면서, 결과를 쥐락펴락하려는 마음만 푸는 거죠. 신기하게도, 손에 힘을 빼면 오히려 더 편안하게 잘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아잔 차가 산 곳은 전기도 없는 시골 숲이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것을 붙잡고 살거든요. 다른 사람의 평가, 이미 흘러간 과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요. 손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꽉 쥐고 있는 셈이에요.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해요.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일 자체일까, 아니면 그 일이 다르기를 바라는 내 마음일까?" 이 질문 하나만 떠올려도, 화가 났을 때 한 발짝 물러나 마음을 지켜볼 틈이 생겨요. 그게 바로 그가 평생 한 수행, 위빠사나의 시작이에요.

괴로움은 깨진 컵에서 오는 게 아니라, 컵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움켜쥔 마음에서 와요. 아잔 차는 "이 컵은 이미 깨졌다"는 말로, 끝이 있음을 받아들이면 지금이 더 소중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알려 줬어요. 다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꽉 쥔 손을 조금 푸는 연습이에요. 다음에 무언가 때문에 속상할 때, 그 일 자체가 문제인지 아니면 그게 달라지길 바라는 내 마음인지 한 번 들여다보세요. 그 짧은 틈에서 편안함이 시작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