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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전기도 없고 알람 시계도 없는 깊은 숲속,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세 시에 종소리가 울려요. 그 소리에 맞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조용히 일어나 가사를 두르고 한자리에 모여 앉습니다. 우리가 학교나 회사에 가려고 아침 일곱 시쯤 겨우 눈을 뜨는 걸 생각하면, 이들은 그보다 네 시간이나 일찍 하루를 여는 셈이에요. 이 사람들은 태국의 숲속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고, 이 단순한 하루의 방식을 평생 갈고닦아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아잔 차'예요.
'아잔'은 이름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뜻의 태국말이에요. 우리가 누군가를 '김 선생님'이라 부르듯, '아잔 차'는 '차 선생님' 정도가 되는 거죠. 차 스님은 1918년 태국 동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스무 살에 정식 스님이 되었고, 한동안은 정해진 절 없이 숲과 마을을 떠도는 떠돌이 수행자로 지냈습니다. 등에 짐 하나만 지고 며칠씩 맨발로 걸으며, 나무 밑에서 자고 하루 한 끼만 먹는 생활이었어요. 그러다 1954년, 고향 근처의 한 숲에 자리를 잡고 절을 세웁니다. 뱀과 모기가 많아 사람들이 꺼리던 그 숲이, 나중에는 여러 나라에서 수행자들이 찾아오는 곳이 돼요.

숲속 스님의 하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밥'이에요. 이들은 부엌에서 직접 밥을 짓지 않아요. 해가 뜨면 발우라고 부르는 밥그릇을 들고 맨발로 가까운 마을까지 걸어가, 동네 사람들이 건네주는 음식을 그릇에 받아 옵니다. 이걸 '탁발'이라고 해요. 받아 온 음식은 모두 한곳에 모았다가,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정오가 되기 전에 딱 한 끼만 먹어요. 오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마당을 쓸고, 해진 가사를 꿰매고, 물을 긷는 일을 하다가, 저녁에는 다시 모여 앉아 함께 명상하고 경을 외운 뒤 각자의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가요. 배고프지 않냐고요? 차 스님은 바로 그 배고픔조차 가만히 들여다보는 게 수행이라고 했어요. 먹고 싶다는 마음이 어떻게 올라왔다 사라지는지 지켜보는 거죠.
차 스님이 특별했던 건, 어려운 불교 용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늘 눈앞의 물건에 빗대 말했어요.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깨진 유리컵'이에요. 손에 든 컵을 들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이 컵을 이미 깨진 것으로 봅니다. 언젠가 떨어져 깨질 걸 알기 때문에, 지금 멀쩡한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지요." 컵이 깨지면 우리는 속상해하지만, 애초에 모든 물건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뜻이에요.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만한 이 한마디에, 불교가 천 년 넘게 다뤄 온 '모든 것은 변한다'는 가르침이 통째로 담겨 있어요.

도시의 큰 절을 두고 굳이 불편한 숲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어요. 숲에는 텔레비전도, 떠들썩한 사람도, 마음을 끄는 물건도 없어요. 남는 건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마음뿐이죠. 우리도 시끄러운 카페보다 조용한 방에서 생각이 더 또렷해지는 걸 떠올리면 비슷해요. 차 스님이 가르친 수행은 '위빠사나', 우리말로 풀면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본다'는 뜻이에요. 거창한 게 아니라, 밥 먹을 때 밥 먹는 줄 알고 걸을 때 걷는 줄 아는 거예요. 마음이 자꾸 딴 데로 달아나니까, 방해가 적은 숲에서 그 마음을 가만히 지켜보는 연습을 한 거죠.
1960년대 후반, 머리가 노랗고 눈이 파란 서양 청년들이 이 시골 숲속 절을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차 스님은 영어를 못 했지만, 그의 단순하고 분명한 가르침은 말이 잘 안 통해도 신기하게 전해졌어요. 결국 외국인 스님이 점점 늘어나서, 1975년에는 아예 외국인을 위한 숲속 절을 따로 세웁니다. 이들이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영국과 미국 같은 곳에 절을 세우면서, 태국 시골의 숲속 수행법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어요. 차 스님은 1992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다듬은 하루의 방식은 지금도 여러 나라의 숲속 절에서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어요.

아잔 차는 태국의 숲속에서,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맨발로 밥을 얻고 하루 한 끼만 먹는 단순한 생활을 평생 되풀이한 스님이에요. 그는 어려운 말 대신 깨진 유리컵 같은 눈앞의 물건으로 가르쳤고, 그 단순함 덕분에 말이 안 통하는 서양 사람들에게까지 가르침이 전해졌어요. 화려한 비결이 있어서가 아니라, 매일 똑같은 하루를 마음을 지켜보며 정직하게 사는 것 자체가 수행이었던 거죠. 오늘 하루 내 마음이 어디로 달아나는지 한 번 가만히 지켜보는 것, 거기서부터가 숲속 수행자의 하루와 닿아 있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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