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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 텔레비전을 켰는데 흰머리를 휘날리며 큰 목소리로 칠판을 탕탕 두드리는 할아버지를 본 적 있나요? 도올 김용옥이라는 분이에요. 1948년에 태어난 한국의 철학자인데, 올해로 일흔여덟이에요. 노자나 공자처럼 어렵기로 소문난 2천 년도 더 된 옛날 책들을, 동네 할아버지가 옛이야기 들려주듯 풀어 주는 걸로 유명해요. 보통 철학자라고 하면 조용한 서재에 앉아 어려운 말만 할 것 같은데, 이분은 무대 위 가수처럼 온몸을 흔들며 떠들어요. 한 번 강의를 시작하면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할 정도예요. 그렇게 신나게 떠드는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늘 '기(氣)'라는 한 글자가 놓여 있어요. 오늘은 이 기가 도대체 무엇인지 같이 따라가 볼게요.

'기'라고 하면 어쩐지 어렵고 신비롭게 들리지만, 사실은 우리가 날마다 입에 올리는 말이에요. "오늘은 기분이 참 좋아", "기운이 하나도 없어", "기가 막힌다" 할 때 그 '기'거든요. 갓 지은 밥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김, 추운 겨울 아침 입에서 나오는 입김, 운동장을 한 바퀴 뛰고 났을 때 몸에서 도는 후끈한 열기를 떠올려 보세요. 눈에 또렷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거기 있고, 쉬지 않고 움직이고, 따뜻하죠. 도올이 말하는 기도 그런 느낌이에요. 온 세상을 가득 채운 채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살아 있는 기운 같은 거예요. 고여 있는 게 아니라 강물처럼 늘 흐른다는 점이 중요해요.

도올의 생각이 재미있어지는 건 여기서부터예요. 우리는 보통 '마음'과 '몸'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잖아요. 마음은 눈에 안 보이는 것, 몸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이렇게요. 그런데 도올은 "마음과 몸은 둘 다 똑같은 기로 되어 있다"고 말해요. 무슨 뜻인지 한번 볼까요. 화가 나면 얼굴이 빨개지고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요. 부끄러우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귀가 빨개지고요. 긴장하면 배가 살살 아프기도 하죠. 마음이 움직이면 몸이 곧바로 따라 움직여요. 마음과 몸이 정말 따로따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겠죠. 도올은 둘이 사실 한 덩어리의 기가 안쪽과 바깥쪽으로 보이는 것뿐이라고 설명해요.

이렇게 세상을 하나의 기로 설명하는 생각을 어려운 말로 '기일원론'이라고 불러요. '하나의 기로 모든 걸 풀어낸다'는 뜻이에요. 돌도, 나무도, 강아지도, 나도, 내 머릿속 생각까지도 전부 똑같은 한 가지 재료인 기로 되어 있다는 거죠. 레고를 떠올리면 쉬워요. 자동차도, 집도, 우주선도, 로봇도 결국 같은 레고 블록으로 만들잖아요. 모양과 크기만 다를 뿐 재료는 하나예요. 도올은 이 세상이 꼭 그 레고 상자 같다고 봐요. 겉모습은 천차만별이지만 뜯어보면 다 같은 기로 이어져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자연이 남남이 아니라 한 가족처럼 연결돼 있다고 말해요.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세상을 둘로 딱 나눠 보는 버릇이 있었어요. 영혼과 몸, 정신과 물질, 하늘과 땅, 이런 식으로요. 게다가 영혼이나 정신은 높고 귀한 것, 몸이나 물질은 낮고 하찮은 것이라고 줄을 세우기도 했어요. 도올은 이 '둘로 나누기'가 영 못마땅했어요. 둘로 나누는 순간 우리 몸을,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과 세상을 자꾸 낮춰 보게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몸은 영혼을 담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식으로요. 그래서 도올은 "나누지 말자, 몸도 마음도 세상도 다 똑같이 소중한 하나의 기다"라고 목청을 높여 말한 거예요. 이게 동양의 오래된 지혜라고 보면서요.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도올은 2천 년도 더 된 동양의 옛 생각을 빌려 이렇게 설명해요. 태어남이란 흩어져 있던 기가 잠깐 한자리에 모인 것이고, 죽음이란 그 모였던 기가 다시 흩어지는 것이라고요. 물을 떠올리면 와닿아요. 추우면 꽁꽁 언 얼음이 되고, 따뜻해지면 다시 흐르는 물이 되고, 펄펄 끓이면 김이 되어 공기 속으로 흩어지죠. 얼음과 물과 김은 모습이 전혀 다르지만 다 같은 물이에요. 김이 되어 사라진 것 같아도 정말 없어진 게 아니라 모습만 바뀐 거고요. 도올의 눈으로 보면 죽음도 끝이 아니라 모습이 바뀌는 일이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지지 않나요.

도올은 철학이 몇몇 똑똑한 학자들만 끼고 노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누려야 할 밥 같은 거라고 봤죠. 그래서 평생을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큰 강연장에서, 마치 시장에서 물건 파는 상인처럼 우렁차게 떠들었어요. 어려운 한자말 뒤에 꼭꼭 숨어 있던 생각을 누구나 알아듣는 쉬운 말로 끄집어내 보여 주려고요. 기철학도 결국 어렵게 폼 잡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네 몸도, 네 옆에 앉은 친구도, 네가 사는 이 세상도 다 소중하고 다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따뜻한 이야기를, 옛 글자인 기로 풀어낸 거예요.

도올 김용옥의 기철학은 한마디로 '온 세상이 하나의 기로 되어 있다'는 생각이에요. 마음과 몸도, 나와 다른 사람도, 나와 자연도 따로가 아니라 같은 재료로 이어져 있어요. 태어남과 죽음마저 기가 잠깐 모였다 흩어지는 일이고요. 다음에 "기분 좋다"거나 "기운 난다"는 말을 무심코 쓸 때, 내 안에서 흐르는 그 기가 사실은 온 세상과 똑같은 재료라는 걸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그게 도올이 우리한테 큰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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