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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날로 치면 이런 일이에요. 어느 강대국이 군대를 보내면서 '그 나라를 점령하되, 무엇보다 그 사람 한 명은 다치지 말고 꼭 데려와라' 하고 못 박아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적국의 장군도 왕도 아니고, 절에 사는 승려 한 명이었어요. 서기 384년, 중국 북쪽의 전진이라는 나라가 실제로 이렇게 했어요. 수만 명의 군대가 사막을 건너간 목적 가운데 하나가 쿠마라지바라는 젊은 스님을 데려오는 일이었죠. 나라가 사람 하나 때문에 전쟁까지 일으킬 만큼,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쿠마라지바는 344년 무렵, 지금의 신장 지역에 있던 쿠차라는 작은 왕국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인도에서 건너온 귀족이고 어머니는 쿠차의 공주였는데, 이름도 두 분 이름을 반씩 떼어 붙여 지었어요. 어머니가 출가하자 일곱 살 아이도 따라 머리를 깎았는데, 한 번 들은 경전을 그대로 외워 어른들을 놀라게 했대요. 멀리 카슈미르까지 가서 공부했고, 처음엔 좁은 가르침을 배우다 더 넓은 대승 불교로 마음을 옮겼어요. 스무 살 무렵엔 이미 서역 전체에 이름이 퍼졌죠. 요즘으로 치면 스무 살에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린 셈이에요. 나라들이 탐낼 만했어요.

쿠차를 무너뜨린 전진의 장군 여광은 쿠마라지바를 손에 넣었어요.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본국에서 왕이 무너지자, 여광은 아예 자기 나라를 세우고 쿠마라지바를 곁에 붙들어 뒀어요. 문제는 여광이 불교를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그는 이 귀한 스님을 그저 신기한 전리품처럼 다뤘어요. 억지로 술을 먹이고 계율을 깨게 하며 놀리기도 했죠. 그렇게 17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어요. 사람을 망가뜨릴 만큼 긴 시간이었지만, 쿠마라지바는 그 안에서 중국말을 깊이 익혔어요. 훗날 누구도 흉내 못 낼 번역을 해낸 밑천이, 바로 이 갇힌 세월에 조용히 쌓이고 있었던 거예요.

401년, 또 다른 나라가 그를 수도 장안으로 모셔 가 나라의 스승으로 받들었어요. 쉰을 훌쩍 넘겨 드디어 자유로워진 쿠마라지바는 수백 명의 학승이 함께하는 번역 작업장을 이끌었어요. 남은 십여 년 동안 옮긴 경전이 삼십 종이 넘고, 권수로는 300권에 가까워요.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처럼 오늘날 절에서 외는 경전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죠. 그는 글자를 하나하나 그대로 옮기기보다, 뜻이 살아 있고 소리 내 읽기 좋게 문장을 다듬었어요. 번역이란 밥을 씹어 남에게 떠먹이는 일 같아서 제맛이 줄어든다며 안타까워하면서도요. 전설에는 그가 세상을 떠나 화장된 뒤에도 혀만은 타지 않고 남았다고 해요. 자기 번역에 거짓이 없었다는 증표처럼요.

쿠마라지바가 특히 공들여 전한 생각이 중관, 즉 '공'이에요. 공이라고 하면 텅 빈 허무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아요. 축구팀을 떠올려 보세요. '팀'은 분명히 있지만, 선수들을 한 명씩 빼고 나면 '팀'이라는 알맹이가 따로 어딘가 남아 있지는 않아요. 선수들이 모여 관계를 맺는 동안에만 팀이 생기죠.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서로 기대어 잠시 이뤄질 뿐, 혼자 변치 않는 알맹이는 없다는 이야기가 공이에요. 쿠마라지바는 이 미끄러운 생각을 또렷한 한자말로 옮겨, 동아시아 사람들이 불교를 비로소 자기 말로 생각할 수 있게 해 줬어요.

쿠마라지바는 나라가 전쟁까지 벌여 데려갈 만큼 빛나던 천재였고, 바로 그 빛 때문에 17년을 포로로 갇혀 살아야 했어요. 하지만 그 갇힌 세월에 익힌 중국말로, 끝내 불경의 언어를 새로 짜 냈죠. 어려운 생각을 누구나 읽을 문장으로 바꾼 그의 솜씨가, 동아시아가 불교를 자기 말로 품게 된 출발점이 되었어요. 한 사람의 불운이 어떻게 천오백 년을 건너오는 선물이 되었는지, 그의 삶이 조용히 보여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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