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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 책을 읽다가 '공(空)'이라는 글자 앞에서 자꾸 멈췄어요. 글자만 보면 '비었다', '없다'는 뜻이라, 많은 사람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 보다' 하고 받아들였거든요. 마치 외국 친구가 한 말을 사전에서 제일 비슷해 보이는 단어로 대충 바꿨다가, 뜻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상황과 비슷해요.
그런데 인도 불교가 말한 '공'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었어요. 이 어긋남을 제대로 바로잡은 사람이 바로 쿠마라지바라는 승려예요. 그는 인도 말과 중국 말 사이에 다리를 놓아, 동아시아 사람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언어' 자체를 바꿔 놓았답니다.

쿠마라지바는 344년부터 413년까지, 일흔 가까이 살았다고 전해져요. 태어난 곳은 지금의 중국 서쪽 끝, 사막 한가운데 있던 쿠차라는 작은 나라예요. 동서양 상인들이 낙타를 끌고 오가던 실크로드 길목이었지요.
이름부터 두 세계가 섞여 있어요. 아버지는 인도에서 온 사람이고, 어머니는 쿠차의 공주였거든요.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인도 말과 그 지역 말을 함께 들으며 자랐어요. 일곱 살 무렵 어머니를 따라 출가해 스님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 이 절 저 절을 다니며 불교 책을 파고들었어요. 두 언어를 모두 품은 아이가 불경에 빠졌으니, 번역가로는 더없이 좋은 출발이었던 셈이에요.

그가 전하려 한 '공'이 무엇인지, 자전거로 한번 그려 볼게요. 자전거는 바퀴와 안장, 체인, 페달이 모여서 된 거예요. 그런데 부품을 하나하나 떼어 보면, 그 어디에도 '자전거라는 알맹이'가 따로 숨어 있지는 않아요. 바퀴는 바퀴고 체인은 체인일 뿐, '자전거 그 자체'라는 부품은 없거든요.
그렇다고 자전거가 '없는' 건 아니에요. 부품이 알맞게 모여 있는 동안에는 분명히 올라타고 달릴 수 있으니까요. '공'이 말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 모든 것은 여러 조건이 모여서 잠시 그 모습이 된 것이라, 변하지 않는 고정된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에요. '아무것도 없다'가 아니라 '딱 정해진 게 없다'는 쪽이지요. 이 둘은 한 끗 차이 같지만, 받아들이면 세상을 보는 눈이 통째로 달라져요.

쿠마라지바 이전에도 번역은 있었어요. 다만 인도 불교 개념을 중국에 이미 있던 도가 사상의 말로 끼워 맞추는 방식이 흔했어요. 이걸 '뜻을 맞춰 푼다'고 해서 격의라고 불러요. 그러다 보니 '공'을 도가의 '무(아무것도 없음)'와 슬쩍 같은 것으로 여기는 오해가 퍼졌지요.
쿠마라지바는 이 버릇을 정면으로 고쳤어요. 그가 특히 공들인 건 용수라는 인도 사상가가 세운 중관 사상이에요. 중관은 '있다'와 '없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가운데를 본다는 가르침인데, 바로 이 '공'을 가장 깊이 파고든 흐름이에요. 그는 비슷한 말로 대충 덮지 않고, 뜻이 어긋나지 않도록 단어를 새로 다듬고 골라 옮겼어요.

그의 재능은 오래 묻혀 있었어요. 한 장군에게 붙잡혀 십칠 년 가까이 중국 변방에 머물러야 했거든요. 예순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401년에 당시 큰 도시였던 장안으로 초청받아 비로소 본격적인 번역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그는 혼자 일하지 않았어요. 수백 명의 승려가 함께 모인 일종의 번역 공방을 이끌었지요. 쿠마라지바가 인도 말 원문을 소리 내어 풀어 주면, 학자들이 그 뜻을 두고 묻고 따지고 다듬어 중국 글로 옮겼어요. 한 문장을 두고 여럿이 토론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은 거예요. 그렇게 십여 년 동안 서른 편이 넘는 불경을 우리에게 전했어요.

놀라운 건, 그가 옮긴 문장 상당수가 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읽힌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제목이라도 들어 본 금강경, 법화경, 그리고 유마경 같은 책의 널리 쓰이는 한문본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어요.
비결은 정확하면서도 입에 착 붙는 문장이었어요. 뜻을 살리되 귀로 들어도 매끄럽게 읽히도록 다듬었거든요. 그래서 그가 고른 번역어들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불교를 생각하고 말하는 기본 단어로 자리 잡았어요. '공'을 비롯한 핵심 개념의 뜻이 그를 거치며 또렷해졌고, 그 언어 위에서 훗날의 불교 철학이 자라났지요.

쿠마라지바는 인도와 중국, 두 언어를 품고 자란 덕분에 '공'이라는 어려운 생각을 어긋남 없이 옮길 수 있었어요. 그가 바로잡은 핵심은 단순해요. 공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고정된 알맹이가 없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비슷한 말로 덮지 않고 정확한 문장으로 전한 것이지요. 한 사람의 번역가가 단어를 제대로 골랐을 때, 그 말은 천오백 년을 건너 동아시아가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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