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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극장에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 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내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도, 바로 옆 사람도, 시간이 가는 것도 잊어버리죠. 화면 속 이야기와 나 사이의 경계가 잠깐 사라져요. 그 몇 초 동안은 '보고 있는 나'와 '보이는 세상'이 하나로 녹아 버려요.
천 년 전 인도 카슈미르에 살던 한 철학자는, 바로 이 순간을 평생 들여다봤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죠. "사실은 세상 전부가 늘 이렇게 하나예요. 우리가 평소에 못 알아챌 뿐이고요." 오늘 그 사람과 그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그 철학자의 이름은 아비나바굽타예요. 950년 무렵부터 1016년 무렵까지, 그러니까 예순 해 남짓을 지금의 인도 북쪽 끝 카슈미르 지방에서 살았어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춥고 조용한 고원이죠.
그는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었어요. 명상과 종교 의식을 다룬 아주 두꺼운 책 '탄트랄로카'를 썼고, 동시에 연극과 시 같은 예술이 왜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지도 깊이 파고들었어요. 철학과 미학, 좀처럼 한 사람이 같이 쥐기 어려운 두 가지를 한 손에 쥐었던 보기 드문 사람이었죠. 그가 정리하고 꽃피운 생각의 흐름을 '카슈미르 샤이바'라고 불러요. 시바라는 신을 중심에 둔, 카슈미르의 가르침이라는 뜻이에요.

'의식 일원론'이라는 말부터 풀어 볼게요.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해요. 세상에 진짜로 있는 건 딱 하나, '의식'뿐이라는 거예요.
거울을 떠올려 보세요. 거울 하나에 사과도 비치고, 내 얼굴도 비치고, 파란 하늘도 비쳐요. 비친 것들은 제각각이지만, 비추는 거울은 하나죠. 아비나바굽타는 세상이 꼭 이 거울 같다고 봤어요. 산도,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다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커다란 의식이 여러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 하나의 의식을 그는 '시바'라고 불렀어요. 저 멀리 하늘에 떨어져 앉은 창조주가 아니라, 지금 이 문장을 읽으며 깨어 있는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고 갈게요. "모든 게 하나의 의식이라면, 눈앞의 세상은 헛것이고 환상이라는 거야?" 하고 묻기 쉬워요. 인도에는 실제로 세상을 일종의 꿈이나 착각으로 본 가르침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비나바굽타는 거기서 갈라져요. 그는 세상이 가짜가 아니라고 했어요. 오히려 하나의 의식이 스스로 자유롭게 펼쳐 낸 진짜 작품이라고 봤죠. 화가를 떠올려 보세요. 화가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리는 게 즐거워서 빈 종이에 산과 강을 그려 넣어요. 그림은 화가와 다른 물건이 아니라, 화가의 마음이 밖으로 나온 모습이죠. 세상도 그렇게, 의식이 즐거워서 스스로 그려 낸 그림이에요. 그래서 이 세상도, 그 안에 사는 나도 버려야 할 헛것이 아니라 소중한 거예요.

그럼 깨달음이란 뭘까요? 보통은 어딘가 멀리 떠나서, 없던 걸 새로 얻어 오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비나바굽타는 정반대로 봤어요.
안경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온 집 안을 뒤지며 안경을 찾은 적, 한 번쯤 있죠? 안경은 한순간도 사라진 적이 없어요. 그저 거기 있다는 걸 내가 못 알아챘을 뿐이죠. 그가 말한 깨달음도 똑같아요. 나는 이미 그 하나의 의식인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아, 이게 나였구나" 하고 다시 알아보는 거예요. 이 '다시 알아봄'을 그의 학파에서는 가장 중요한 열쇠로 삼았어요. 멀리 가서 새로 얻는 게 아니라, 원래 내 것이던 걸 되찾는 거죠.

여기서 아비나바굽타가 정말 특별해져요. 그는 예술을 종교만큼이나 진지하게 봤거든요.
슬픈 영화를 보고 한참 울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후련하고 맑아질 때가 있죠. 내 일도 아닌데 왜 그럴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해요. 좋은 예술에 푹 빠지는 순간, 우리는 잠깐 '나'라는 좁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요.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 감정을 내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순수한 맛으로 느끼게 되죠. 인도 미학에서는 이 맛을 '라사'라고 불러요. 그리고 그렇게 나를 잊고 감정을 맛보는 맑은 즐거움이, 바로 그 하나의 의식을 살짝 맛본 것이라고 그는 봤어요. 극장에서 나를 잊던 그 처음의 몇 초가, 사실은 깨달음의 작은 예고편이었던 셈이에요.

아비나바굽타의 생각은 결국 한 문장으로 모여요. 세상도 나도 따로 떨어진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이 여러 모습으로 비친 것이라는 거예요. 그 세상은 헛것이 아니라 의식이 즐거워서 그려 낸 진짜 그림이고요. 그래서 깨달음은 멀리 가서 얻는 게 아니라, 이미 나였던 것을 다시 알아보는 일이에요. 영화에 빠져 나를 잊는 순간처럼, 예술의 기쁨마저 그 하나됨을 맛보는 통로가 되고요. 천 년 전 카슈미르의 추운 고원에서, 한 사람이 우리가 매일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을 붙들고 평생을 물었다는 것.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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