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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손을 책상 위에 가만히 올려놓아 보세요. 책상은 멈춰 있는 것 같죠. 그런데 아주 작은 세계로 들어가 보면, 책상을 이루는 알갱이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부르르 떨고 있어요. 우리 눈에만 멈춰 보일 뿐이에요. 휴대폰을 무음으로 바꿔 두면 조용한 것 같지만, 손에 쥐고 있으면 '드르륵' 하는 떨림이 손바닥으로 전해지죠. 세상은 이렇게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속으로는 늘 떨고 있어요.
그런데 천 년 전 인도에도 이 떨림에 푹 빠진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떨림이야말로 세상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바로 아비나바굽타라는 철학자예요.

아비나바굽타는 서기 950년 무렵부터 1016년 무렵까지, 지금의 인도 북쪽 카슈미르 지방에서 살았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이에요. 그는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신과 마음의 깊은 자리를 파고든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춤과 시와 연극이 왜 사람을 울리고 웃게 만드는지 따지는 예술 이론가이기도 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철학 교수와 영화 평론가를 한 몸에 지닌 셈이에요.
그 시절 카슈미르에는 시바 신을 중심에 둔 '샤이바'라는 생각의 흐름이 있었어요. 여러 스승이 조금씩 다르게 풀어 놓아 갈래가 많았는데, 아비나바굽타는 그 흩어진 흐름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고 더 깊게 다듬은 사람이에요. 그가 평생 손에서 놓지 않은 열쇳말 하나가 바로 '스판다'였어요.

'스판다'는 산스크리트 말로 '떨림' 또는 '진동'이라는 뜻이에요. 거창한 말 같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거예요.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것, 추울 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 그게 다 스판다예요.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하나 톡 던지면 물결이 동그랗게 퍼져 나가죠. 아비나바굽타가 본 우주가 딱 이 물결 같았어요. 다만 보통 우리는 돌을 던진 사람과 물과 퍼지는 물결을 따로따로 보지만, 그는 그 셋이 전부 하나라고 봤어요. 세상은 죽은 듯 멈춰 있는 돌덩이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끊임없이 출렁이고 떨리면서 살아 있는 거라는 거죠.

그가 말한 떨림은 세탁기가 윙윙대는 떨림과는 조금 달라요. 기계의 떨림은 바깥에서 보이는 흔들림이지만, 그가 더 중요하게 본 건 마음 안쪽의 떨림이에요.
아침에 자다 깨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깊이 잠들었을 땐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없죠. 그러다 '아, 나 여기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짧은 순간이 와요. 그 알아차림 자체가 아비나바굽타에게는 작은 떨림이었어요. 마음이 '없음'에서 '있음'으로 살짝 출렁이며 깨어나는 거예요. 그는 이 미세한 출렁임이 우주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의 떨림과 똑같다고 봤어요. 나라는 작은 의식이 깨어나는 일과 온 우주가 펼쳐지는 일이, 크기만 다를 뿐 같은 떨림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아비나바굽타의 가장 멋진 생각이 나와요. 그는 이 떨림을 예술하고 이었어요. 사실 그는 인도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예술 이론을 누구보다 깊이 파고든 사람이기도 했거든요.
좋은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찡해지거나, 노래 한 소절에 팔에 소름이 돋은 적 있죠? 그 순간 마음이 '확' 하고 움직여요. 아비나바굽타는 예술이 주는 이 깊은 감동을 '라사'라고 불렀어요. '라사'는 원래 '맛' 또는 '즙'이라는 뜻인데, 잘 익은 과일의 단물처럼 마음에 스며드는 감동을 가리켜요. 그는 이 감동의 순간이 바로 마음이 떨리는 순간이라고 봤어요.
그러니까 우주가 떨리는 것과, 내 마음이 시 한 편 앞에서 떨리는 것이 결국 같은 떨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에게 시를 읽고 춤을 보는 일은 그저 시간을 때우는 놀이가 아니었어요. 우주의 떨림을 내 안에서 직접 맛보는, 꽤 진지한 일이었어요. 철학과 예술이 이렇게 한 줄로 이어진 거죠.

곰곰이 보면 신기한 이야기예요. 멈춰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은 떨고 있고, 그 떨림이 작은 돌멩이부터 내 마음, 그리고 예술의 감동까지 하나로 잇는다니까요.
재미있게도 오늘날 과학도 비슷한 말을 해요.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알갱이들이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진동한다고 하죠. 물론 아비나바굽타가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그걸 본 건 아니에요. 그는 그저 자기 마음을 오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살아 있다는 건 곧 떨고 있다는 것임을 느꼈을 뿐이에요. 천 년 전 한 사람의 조용한 직관이 지금 들어도 영 낯설지 않다는 점, 어쩌면 그게 이 생각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일지도 몰라요.

아비나바굽타는 천 년 전 카슈미르에서 살았던 철학자이자 예술 이론가예요. 그는 멈춰 보이는 세상이 사실은 안에서부터 끊임없이 떨고 있다고 보았고, 그 떨림을 '스판다'라고 불렀어요. 온 우주가 펼쳐지는 떨림, 내가 '있다'고 깨어나는 마음의 떨림, 그리고 예술 앞에서 가슴이 찡해지는 떨림이 모두 같은 하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어요. 다음에 좋은 음악에 소름이 돋거든, 천 년 전 그가 말한 우주의 떨림을 잠깐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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