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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안경을 찾느라 온 집을 뒤진 적 있나요? 책상 밑도 보고, 가방도 다 열어 보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안경은 줄곧 내 이마 위에 얹혀 있었어요. 없어서 못 찾은 게 아니라, 있는데 못 알아본 거였죠. 이 작고 황당한 순간 속에 오늘 이야기할 철학의 씨앗이 들어 있어요. 약 천 년 전 인도에는 이 '있는데 못 알아봄'을 평생 파고든 사람이 있었거든요. 이름은 아비나바굽타예요.

아비나바굽타는 서기 950년 무렵, 지금의 인도 북쪽 카슈미르 지방에서 태어났어요. 한 분야만 판 사람이 아니에요. 철학도 하고, 시와 연극을 뜯어보는 미학도 하고, 명상 수행도 직접 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한 사람이 철학 교수이면서 영화 평론가이면서 음악가까지 겸한 셈이죠.
그가 남긴 책은 양부터 어마어마해요. 대표작 '탄트라알로카'는 한 권이 아니라 백과사전처럼 두꺼운 묶음이에요. 그는 카슈미르에 내려오던 시바 신앙의 철학, 흔히 카슈미르 샤이바라고 부르는 흐름을 한데 모아 정리한 사람이에요. 혼자 처음 만든 건 아니고, 앞선 스승들이 닦아 둔 길을 모아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쌓아 올린 거예요.

그 철학의 핵심 단어가 '프라티아비즈냐'예요. 낯선 산스크리트 말이지만 뜻은 의외로 단순해요. 우리말로 옮기면 '다시 알아봄', 곧 재인식이에요.
처음 아는 게 아니라 다시 아는 거예요. 길에서 누가 스쳐 지나가는데 '어, 저 사람 초등학교 짝꿍 아니야?' 하고 알아채는 순간 있잖아요. 그 사람은 원래 그 사람이었어요. 달라진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드디어 알아봤다는 사실 하나예요. 프라티아비즈냐는 바로 이 알아봄을 가리켜요.

아비나바굽타 쪽 철학자들이 즐겨 든 비유가 있어요. 한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보고 싶어 애를 태워요.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이 눈앞에 와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해요. 곁에 있던 친구가 '저 사람이 바로 네가 그렇게 찾던 그 사람이야' 하고 일러 주죠. 그 한마디에 여인은 비로소 알아보고, 참았던 기쁨이 터져 나와요.
여기서 핵심은 그 사람이 새로 나타난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처음부터 거기 있었어요. 부족했던 건 만남이 아니라 알아봄이었어요. 안경이 새로 생긴 게 아니라 줄곧 이마 위에 있었던 것처럼요.

아비나바굽타는 이 비유를 사람과 세상 전체로 넓혀요. 그가 보기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원래 시바, 곧 온 세상을 환히 비추는 큰 의식과 이어져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까맣게 잊고 '나는 작고 부족한 사람이야' 하면서 행복을 자꾸 바깥에서만 찾아 헤매요.
그가 말한 깨달음은 멀리 떠나 새것을 얻어 오는 게 아니에요. 이마 위의 안경처럼, 이미 내 안에 있던 걸 다시 알아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 철학을 재인식의 철학이라고 불러요. 잃어버린 적도 없는 걸 되찾는 셈이라, 사실은 한 걸음도 어디 갈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아비나바굽타의 색깔이 또렷해져요. 인도 철학 가운데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헛것이라 여기고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흐름도 있어요. 그런데 그는 반대로 봤어요. 이 세상은 가짜가 아니라, 큰 의식이 스스로 펼쳐 보이는 놀이이자 춤이라는 거예요.
화가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하나의 의식이 산과 강과 너와 나로 자기를 나눠 그려 낸 그림이 세상이에요. 그러니 세상을 미워하며 도망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이게 다 나의 펼쳐짐이구나' 하고 알아보면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의 철학은 어둡지 않고 어딘가 환하고 너그러워요.

아비나바굽타가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그는 딱딱한 철학만 한 게 아니라, 연극과 시를 보고 느끼는 감동까지 깊이 파고들었어요. 인도에는 예술이 주는 정서의 맛을 '라사'라고 부르는 오랜 전통이 있는데, 그가 이걸 누구보다 정교하게 풀어냈어요.
좋은 연극을 보면 슬픈 장면에 같이 울고, 끝나고 나면 묘하게 후련하고 마음이 가득 차죠. 그는 바로 그 순간이 평소 잊고 살던 큰 의식의 기쁨을 잠깐 맛보는 때라고 봤어요. 예술이 우리에게 '이게 네가 원래 지닌 기쁨이야' 하고 살짝 알아보게 해 준다는 거예요. 철학과 미학을 이렇게 한 줄로 꿴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아비나바굽타의 프라티아비즈냐, 곧 재인식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어요. 우리가 찾는 행복과 자유는 멀리서 새로 얻어 올 게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데 아직 못 알아본 것뿐이라는 거예요. 이마 위의 안경처럼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더 가지라고 다그치지 않고, 이미 가진 걸 가만히 다시 보라고 일러 줘요. 천 년 전 카슈미르에서 나온 이 조용한 생각이 오늘 우리 마음에도 남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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