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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반 친구 서른 명에게 똑같은 자전거를 한 대씩 나눠 준다고 생각해 봐요. 색깔도 크기도 다 같아요. 누가 봐도 공평하죠. 그런데 그중 한 친구는 얼마 전 다리를 크게 다쳐서 자전거를 탈 수가 없어요. 똑같은 자전거를 받았는데, 누군가는 신나게 학교까지 달려가고 누군가는 그냥 세워 두기만 해요.
“똑같이 나눠 줬으니 공평한 거 아니야?” 여기서 멈추면 그렇게 보여요. 하지만 받은 물건이 같아도 그걸로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정말 공평한 걸까요? 바로 이 물음을 평생 파고든 사람이 인도에서 태어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 아마르티아 센이에요.

센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마주 선 상대부터 만나 봐요. 미국 철학자 존 롤스는 1971년에 『정의론』이라는 유명한 책을 한 권 냈어요. 핵심 생각은 이래요. 우리가 어떤 집안에, 어떤 몸으로, 어떤 재능을 갖고 태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의 규칙을 정한다고 상상해 보자는 거예요.
이걸 롤스는 ‘무지의 베일’이라고 불렀어요. 내가 부자로 태어날지 가난하게 태어날지 모르니까, 누구든 받아들일 만한 공정한 규칙을 고르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롤스는 자유와 돈, 기회 같은 기본적인 몫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나누는 규칙을 세우면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봤어요.
롤스의 그림은 멋졌고, 센도 많은 부분을 존경했어요. 그런데 센은 한 가지를 콕 짚어요. “몫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같은 몫을 받아도 사람마다 그걸로 할 수 있는 일이 다르잖아요?”
센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어릴 적 기억이 있어요. 1943년 인도 벵골에서 큰 기근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는데, 그때 센은 열 살 무렵이었어요. 나중에 그는 곳간에 곡식이 아예 없었던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그 곡식을 살 힘이 없어서 굶었다는 걸 알게 됐죠. 가진 것의 양보다 ‘실제로 먹을 수 있느냐’가 삶과 죽음을 갈랐던 거예요.
그래서 센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봐야 한다고 했어요. 학교에 갈 수 있는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사람이 실제로 누리는 ‘할 수 있음’을 센은 역량이라고 불렀어요.

센이 롤스와 갈라지는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롤스는 ‘완벽하게 정의로운 사회’의 설계도를 먼저 그리려 했어요. 센은 이렇게 되물어요. 꼭 완벽한 그림을 그려야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산을 떠올려 봐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어디인지 몰라도, 눈앞의 언덕보다 저 산이 더 높다는 건 우리가 금방 알아요. 마찬가지로 완벽한 정의가 무엇인지 다 합의하지 못해도, 굶주림이나 차별처럼 누가 봐도 나쁜 불의는 알아볼 수 있어요. 센은 멀고 완벽한 이상을 그리느라 멈추지 말고, 지금 눈앞의 더 나쁜 것부터 줄여 가자고 했어요.

이 생각은 책 속에만 머물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한 나라가 잘사는지를 주로 돈, 그러니까 국민 한 명당 소득으로만 따졌어요. 센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어요. 사람들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지, 글을 읽고 배울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1990년부터 유엔은 소득에 더해 수명과 교육까지 묶어 나라의 삶을 재는 새로운 잣대를 만들었어요. 센의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요. 가난을 ‘지갑이 얼마나 비었나’가 아니라 ‘이 사람이 무엇을 못 하고 있나’로 보게 된 거예요. 센이 199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데에도 이런 공이 컸어요.
센은 롤스를 무너뜨리려던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들어간 사람이에요. 똑같이 나누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받은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까지 보자고 했죠. 그리고 완벽한 정의를 다 그리지 못해도, 눈앞의 분명한 불의부터 줄여 가면 된다고요. 다음에 “이건 공평해”라는 말을 들으면, 한 번 물어봐요. 똑같이 나눴다는 뜻일까, 아니면 모두가 정말 그걸 누릴 수 있다는 뜻일까. 이 물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센의 생각은 이미 절반쯤 우리 것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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