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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 머릿속 '스님'은 어떤 모습인가요? 아마 조용한 절에서 차분히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분일 거예요. 그런데 약 1300년 전 중국에, 제자가 질문을 하면 갑자기 "할!" 하고 천둥 같은 고함을 지르거나, 들고 있던 몽둥이로 등짝을 후려치던 스님이 있었어요. 이름은 마조 도일. 700년대 당나라 때 살던 선종의 큰 스승이에요.
이상하죠. 좋은 말로 차근차근 가르치면 될 텐데, 왜 소리를 지르고 몽둥이까지 들었을까요? 오늘은 이 거칠어 보이는 가르침 속에 숨은 다정한 뜻을 천천히 풀어 볼게요.

먼저 '선'이 뭔지부터요. 선은 불교의 한 갈래인데, 책을 잔뜩 읽거나 어려운 이론을 외워서 깨닫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곧장 들여다봐서 깨닫자는 공부예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자전거 타는 법을 백 권의 책으로 배운 사람과, 그냥 올라타서 몇 번 넘어지며 익힌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직접 페달을 밟기 전엔 진짜로 탈 줄 아는 게 아니죠. 선은 말해요. "깨달음도 똑같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네가 지금 직접 겪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깨달음'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했어요. "도가 뭡니까?" "부처가 뭡니까?" 하고 멋진 정답을 받아 적으려 했죠. 마조가 보기엔, 바로 그 받아 적으려는 버릇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요.

마조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 '평상심시도'예요. 풀면 "평소의 마음이 그대로 도다"라는 뜻이에요. 도, 즉 깨달음이 저 멀리 신비한 곳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친구를 보면 반가워하는 그 평범한 마음. 마조는 그 안에 이미 답이 있다고 봤어요. 굳이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멀리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거죠.
이게 왜 그렇게 새로웠을까요? 그전까지 깨달음은 오랜 수행 끝에야 겨우 도달하는 까마득한 목표처럼 여겨졌거든요. 그런데 마조는 "네가 지금 쓰고 있는 그 마음이 바로 그거야"라고 한 거예요. 멀리 있는 줄 알고 평생 찾아다닌 보물이, 사실 처음부터 내 주머니 속에 있었다는 말과 비슷해요. 그래서 그의 말은 당시 사람들에게 무척 충격이었어요.

이제 고함과 몽둥이로 돌아와요. 답이 이미 내 안에, 지금 여기에 있는데도, 제자는 자꾸 입으로만 "도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요. 머릿속으로는 멋진 정답을 그리고 있는 거죠.
이때 스승이 친절하게 설명을 더 해 주면 어떻게 될까요? 제자는 그 설명을 또 한 줄 받아 적으며 "아, 도는 이런 거구나" 하고 머리에만 차곡차곡 담아요. 점점 더 생각의 미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조는 말 대신 고함을 질렀어요. "할!" 하고요. 깜짝 놀라 생각이 뚝 끊기는 그 한순간, 제자는 아무 설명도 없이 '지금 여기'로 확 돌아와요. 몽둥이도 같은 뜻이에요. 등짝을 탁 맞는 순간, 따져 묻던 머리가 멈추고 살아 있는 몸과 마음만 남죠.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말이 아니라 몸으로 알려 준 거예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마조의 고함 한 번에 제자 백장이 사흘 동안 귀가 먹먹했다고 할 정도였대요.

마조다운 장면이 하나 있어요. 어느 날 제자 백장과 길을 걷는데 들오리 떼가 푸드덕 날아갔어요. 마조가 물었죠. "저게 뭐냐?"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느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조가 백장의 코를 비틀었어요. 백장이 "아얏!" 하고 소리치자 마조가 말했죠. "날아갔다더니, 여기 이렇게 있지 않으냐."
무슨 뜻일까요? 백장의 마음은 이미 저 하늘로 날아간 오리를 좇고 있었어요. 지금 여기 함께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은 까맣게 잊은 채로요. 코가 비틀려 "아얏!" 하는 그 순간에야, 딴 데 가 있던 마음이 '지금 여기'로 돌아온 거예요. 고함과 몽둥이가 노린 게 바로 이 한순간이에요.

마조의 방식은 그 뒤 선종의 풍경을 통째로 바꿨어요. 점잖게 경전을 풀이하던 자리에, 고함과 몽둥이와 엉뚱한 행동이 성큼 들어왔죠. 전해지기로는 마조에게 깨달음을 얻은 제자가 백서른 명이 넘었다고 하고, 그 흐름에서 고함으로 유명한 임제, 몽둥이로 유명한 덕산 같은 스승들이 줄줄이 나왔어요.
오해는 말아요. 마조가 폭력을 좋아한 게 아니에요. 고함도 몽둥이도, 생각의 미로에 갇힌 제자를 단번에 '지금 여기'로 끌어내려는 다정한 충격이었어요.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걸, 그래서 몸으로 전한 거죠.

마조 도일은 1300년쯤 전 중국에서, 깨달음이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평소의 평범한 마음 안에 있다고 가르친 선사예요. '평상심시도', 평소의 마음이 곧 도라는 말이 그 핵심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도를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자, 그는 설명 대신 고함을 지르고 몽둥이를 들었어요. 생각을 뚝 끊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하려는 거였죠. 다음에 누군가 "정작 중요한 건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1300년 전 제자의 코를 비틀던 한 스승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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