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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드라가 사라진 곳은 감옥이 아니었어요.
그가 직접 고른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17세기 초, 사파비 왕조의 수도 이스파한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학문 도시였어요.
지금의 이란 중부에 해당하는 그곳에서, 물라 사드라는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걷고 있었습니다.
스승 미르 다마드는 왕의 철학 고문이었고, 또 다른 스승 셰이크 바하이는 시아파 신학의 최고 권위자였어요.
그런데 사드라가 기존 학계와 부딪혔습니다.
당시 주류 학자 집단인 울라마는 이슬람 법과 신학을 엄격히 수호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종교계와 법조계를 합친 원로 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울라마들이 사드라의 철학에 이단 딱지를 붙였어요.
신비주의와 이성 철학을 뒤섞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사드라는 도망치는 대신, 직접 지도를 펼쳐 이스파한 남쪽 산골 마을 카학을 골랐어요.
잘나가는 임원이 사내 정치에 휘말려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아무도 모르는 시골 농가에 들어간 상황과 비슷해요.
차이가 있다면, 사드라는 거기서 15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를 침묵시키려던 침묵이, 이슬람 철학사 최대 분량의 책을 만들었어요.
카학의 산골 생활은 처벌이 아니었습니다.
사드라는 단식과 명상으로 몸을 다스리는 한편, 쉬지 않고 글을 썼어요.
그 결과물이 『아스파르 알아르바아』, 번역하면 "네 가지 여행"이라는 제목의 9권짜리 대작입니다.
『아스파르』는 영혼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네 단계를 다룬 책이에요.
자기 자신을 알고, 세계를 이해하고, 신과 하나가 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단순한 신학 교과서가 아니라, 철학·신비주의·이슬람 신학을 하나로 엮은 완전히 새로운 사상 체계였어요.
코로나 격리 2년 동안 평생 못 쓰던 책을 완성한 작가처럼, 강요된 고립이 오히려 가장 큰 결과물을 낳은 셈이에요.
그를 이단이라 몰아붙인 울라마들은 사드라를 지웠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이슬람 철학사에서 가장 긴 그림자를 만들어줬습니다.

사르트르가 1943년 파리 카페에서 외친 그 문장은, 한 페르시아 은둔자가 300년 전 이미 적어놓은 것이었어요.
사르트르의 유명한 선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를 들어본 적 있나요?
쉽게 풀면 이런 뜻이에요.
의자라는 개념이 먼저 있고 이 의자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 의자가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먼저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사드라는 1640년경 카학 산골에서 이것을 이미 정식화해 두었어요.
그의 핵심 명제는 '아실라트 알우주드', 번역하면 "존재의 우선성"이에요.
본질이 존재에 앞서는 게 아니라, 존재가 본질을 만든다는 주장입니다.
사드라는 사르트르보다 훨씬 더 나아갔어요.
존재가 그냥 있는 것도 아니라,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했거든요.
이것이 '하라카 자와하리야', "실체적 운동"이라는 개념입니다.
돌이나 나무처럼 눈에 보이는 움직임이 아니에요.
존재 자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강물이 같은 자리에 있어도 매 순간 다른 물로 채워지듯, 존재하는 모든 것은 쉬지 않고 변한다는 생각입니다.
당시 이슬람 철학의 주류는 "변하는 건 사물의 겉모습일 뿐, 존재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입장이었어요.
사드라는 그 전제를 통째로 뒤집었습니다.
그래서 이단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산골로 갔고, 그래서 9권짜리 책이 탄생했어요.
존재는 멈추지 않는다고 평생 가르친 사람이, 일곱 번째 길 위에서 멈췄어요.
사드라는 평생 일곱 차례 메카 순례를 떠났습니다.
메카 순례, 즉 하지는 이슬람에서 평생 한 번은 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예요.
그걸 일곱 번이나 반복했다는 건, 그에게 이 여정이 의무 이상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길 위에서, 현재 이라크 남부의 항구도시 바스라 인근에서 사드라는 쓰러졌어요.
1640년 무렵의 일입니다.
"존재는 끊임없이 운동한다"고 평생 외친 철학자가, 실제로 평생 길 위에서 살았고, 결국 그 길 위에서 생을 마쳤어요.
우연이라기엔 너무 딱 맞아요.
카학에서 15년을 견뎠고, 이스파한으로 돌아왔고, 일곱 번 메카를 향해 떠났어요.
사드라에게 삶은 정착이 아니라 계속되는 여행이었습니다.
일곱 번째 순례가 끝나지 않은 채로 그는 멈췄는데, 어쩌면 그건 멈춤이 아니었을지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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