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철학
일상에 적용 가능한 철학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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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 아니 쓰나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수많은 '정답'과 '팩트'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쉽게 길을 잃고,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스러워합니다.
혹시 당신은, '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정답 대신 오직 '질문'만을 던졌던 한 철학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옵니다. 2500년 전, 맨발로 아테네 거리를 누비던 사람, 소크라테스입니다. 오늘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위대한 철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툭 튀어나온 눈, 들창코에 배불뚝이 외모를 가진, 지극히 서민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그 역시 돌을 다듬는 일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부와 명예를 좇지 않았습니다. 그의 무대는 화려한 강단이 아닌,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장사하던 시끌벅적한 아고라(광장)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든 붙잡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장군, 정치가, 시인, 장인...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용기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왜 그는 편안한 삶 대신, 이토록 피곤하고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한 질문의 길을 택했을까요? 그 답의 실마리는 그의 가장 유명한 말 속에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 이 말은 원래 델포이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진 경구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신탁을 구하러 오가는 그곳에서, 이 문장은 신을 만나기 전에 먼저 너 자신부터 돌아보라는 준엄한 명령이었죠. 소크라테스는 이 문장을 자신의 철학적 모토로 삼았습니다.
그가 말한 '너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의 MBTI나 좋아하는 색깔을 아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즉 '무지의 자각'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지혜롭다고 소문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눈 뒤,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요. 그들과 자신의 유일한 차이점은, 자신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자신의 한계와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진짜 '앎'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비로소 배우려 하고, 질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지의 자각이 더 높은 차원의 지혜로 나아가는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결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질문하고, 또 질문했습니다. 상대방이 제시한 답의 허점을 파고들어 스스로 모순을 깨닫게 만들었죠.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을 돕는 산파였듯, 자신은 상대방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출산'하도록 돕는 '정신의 산파'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산파술(Maieutike)'입니다.
이 방식은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편안하게 정답을 받아먹고 싶었던 이들에게 소크라테스의 끝없는 질문은 짜증 나는 일이었죠. 하지만 그는 지식의 주입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 믿었습니다. 진리는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고통스러운 성찰의 과정을 통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399년, 그는 두 가지 죄목으로 고발당합니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신을 끌어들인 죄'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
하지만 이 죄목들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의 질문들은 아테네 사회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가치와 권위를 뿌리부터 흔들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의 선물'이자, 아테네라는 커다란 말을 성가시게 해서 잠을 깨우는 '쇠파리(gadfly)'에 비유했습니다. 기득권층에게 그는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재판정에서도 그의 태도는 당당하고 비타협적이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구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이 아테네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배심원단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사형 선고 후, 소크라테스의 제자들과 친구들은 탈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흔히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때문에 그가 탈출을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후대의 창작에 가깝습니다.
플라톤의 저서 『크리톤』에 따르면, 그가 탈출을 거부한 이유는 훨씬 더 깊은 철학적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아테네의 법 아래에서 시민으로서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기에, 이제 와서 그 법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어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국가와 시민이 맺은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을 존중하는 태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법을 어기고 도망치는 것은 평생 자신이 주장해온 철학, 즉 '정의롭게 사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는 부당하게 죽는 것이, 부당하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죽음은 그 자체로 자신의 삶과 철학이 완벽히 일치함을 증명한, 가장 위대한 실천이었습니다. 그는 말로만 떠든 철학자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 철학을 완성한 사람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산은 잘 정리된 이론 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태도' 그 자체입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더 쉽게 생각하기를 멈춥니다. 남들이 정해준 길,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답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2500년 전 소크라테스의 유령이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네가 믿고 있는 그것은, 참으로 무엇인가?"
오늘, 당신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신념, 당연하게 여기는 가치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야말로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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