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기원전 5세기 시칠리아 아크라가스의 거리에는 특이한 남자가 있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주색 로브를 걸치고 청동 샌들을 신었으며, 머리에는 델포이 월계관을 얹었다.
그가 시장을 가로질러 걸으면 군중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는 이 반응을 즐겼다.
아마도 그게 요점이었을 것이다.
자주색이란 당시 보통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색이었다.
염료 한 방울을 뽑기 위해 수천 마리의 뿔고둥을 삶아야 했고, 그렇게 만든 천은 금보다 비쌌다.
왕과 신관만이 자주색 옷을 입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왕도 신관도 아니었지만, 그 둘을 동시에 암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집안은 아크라가스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가문이었다.
그는 그 재산과 영향력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참주정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섰고, 그 직후 주민들이 왕권을 제안하자 거절했다.
대신 민주정 수립을 주도했다.
권력을 얻고 싶었던 사람이 권력을 사양했다.
아니면, 왕좌에 앉는 것보다 더 높은 자리를 원했기 때문에 왕좌 따위는 필요 없었던 것일까.
그가 원한 자리는 신이었으니까.
아크라가스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 셀리눈테에 역병이 돌았다.
역병의 원인은 지금의 우리가 들으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
도시 가장자리의 늪지대.
여름이면 물이 고여 썩고, 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시내까지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공기를 더럽힌다고 느꼈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원인을 설명하는 언어가 없었을 뿐이다.
엠페도클레스는 셀리눈테에 와서 문제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돈을 털어 공사를 시작했다.
인근 두 강줄기의 물길을 늪지대로 끌어들였다.
흐르는 물이 고인 물을 밀어내고, 썩은 것들을 바다 쪽으로 씻어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역병이 멈추자 주민들이 엠페도클레스 앞에 엎드려 신으로 경배했다고 썼다.
오늘날의 우리라면 그것을 위생 공학이라고 부를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엠페도클레스 자신에게는, 그 두 반응 사이 어딘가에서, 확신이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신이 이런 일을 한다면, 자신도 신과 다를 것이 없다고.
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꺼운 논문을 떠올린다.
딱딱한 문장, 각주, 참고문헌.
엠페도클레스는 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시를 썼다.
《자연에 관하여》는 약 2,000행의 헥사메트로스, 즉 호메로스가 일리아드를 쓸 때 사용한 바로 그 운율의 서사시였다.
사람들이 영웅 이야기를 듣듯 그의 철학을 들을 수 있도록.
신화의 언어로 논리를 포장한 것이다.
그 내용은 이랬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네 가지 '뿌리'로 이루어져 있다.
흙, 물, 공기, 불.
그는 이것들을 리조마타(rhizomata), 즉 뿌리라고 불렀다.
나무가 뿌리에서 자라듯, 만물이 이 넷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뿌리들을 섞고 나누는 힘이 필요하다.
그는 두 힘을 제안했다.
사랑(필리아)과 투쟁(네이코스).
사랑이 우세할 때 네 뿌리는 서로 끌어당겨 합쳐진다.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투쟁이 우세할 때 그것들은 분리된다.
사물이 사라진다.
세상은 이 두 힘의 줄다리기 안에서 끊임없이 생겨나고 부서진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물리학의 초창기 직관이라고 읽는다.
원소, 인력과 척력, 생성과 소멸.
물론 2,500년 전의 직관이 현대 물리학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방향성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사실은 지금도 철학사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를 수사학의 발명자라고 불렀다.
논리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그가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설득하고 싶었고, 그래서 운율을 골랐다.
두 번째 서사시 《정화》는 다른 종류의 텍스트였다.
첫 행부터 달랐다.
그는 거기서 스스로를 '불멸의 신'이라고 선언했다.
환영하는 군중을 향해 그들이 '신을 맞이하고 있다'고 썼다.
겸손의 흔적은 없었다.
이 시는 영혼의 윤회를 다뤘다.
죄를 지은 영혼은 몸에서 몸으로 떠돌며 정화된다.
식물이 되었다가 동물이 되었다가 다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충분히 정화된 영혼은 마침내 신이 된다.
이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이 분명히 보인다.
피타고라스도 영혼의 윤회를 가르쳤고, 의식의 순결을 강조했다.
엠페도클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정화》에서 그는 육식을 금했고, 콩도 먹지 말라고 했다.
특정 꽃들을 꺾어서도 안 됐다.
삶의 규칙들이 시 속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자신을 신이라고 선언하지는 않았다.
그 부분은 엠페도클레스만의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 선언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시적 과장인가.
종교적 수사인가.
아니면 그는 정말로 믿었는가.
셀리눈테의 역병을 멈춘 사람.
왕권을 사양한 사람.
자주색 옷을 입고 거리를 걸은 사람.
그는 어쩌면 '믿었다'와 '연기했다' 사이의 경계가 이미 허물어진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완벽하게 그의 삶과 맞아떨어져서, 오히려 의심스러울 정도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이렇다.
어느 날 밤, 연회가 끝난 뒤, 엠페도클레스는 홀로 자리를 떴다.
동이 틀 무렵 사람들이 그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가 무언가를 분출해 올려보냈다.
청동 샌들 한 짝.
그의 것이었다.
신이 되려는 자가 화산에 뛰어들어 사라졌고, 화산은 그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물 하나를 되돌려 보냈다.
이야기로서는 너무 훌륭하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이 이야기를 두고 논쟁했다.
스트라본은 다른 버전을 전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로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조용한 노년, 조용한 죽음.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2,500년의 시간이 쌓인 뒤에는 기록이 곧 현실의 일부가 된다.
뤼키아노스는 그의 죽음을 비웃는 짧은 글을 남겼다.
호라티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의 어리석은 최후로 각색했다.
그들의 시대에 이미 이 죽음은 오만에 대한 우화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르게 읽는다.
그 청동 샌들 한 짝에 대해.
화산이 무언가를 돌려보냈다는 것.
그가 뛰어들었다면, 적어도 그는 진짜로 믿었던 셈이다.
연기나 수사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정말 불멸이라고.
아크라가스의 부유한 청년이 자주색 옷을 입고 거리를 걷기 시작한 것은 거기서 끝날 이야기의 첫 페이지였다.
두 강을 돌려 역병을 멈추고, 2,000행의 시로 우주의 구조를 노래하고, 스스로를 신이라 선언하고, 사라졌다.
청동 샌들 한 짝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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