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이 GDP를 거부한 이유 — 역량 접근법의 탄생
누스바움은 16살에 유대교로 개종해 어머니와 의절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철학자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요.
마사 누스바움은 1947년 뉴욕의 부유한 백인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전형적인 상류층 사교계 여성이었죠.
그 집안에서 '올바른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10대가 된 누스바움은 어머니가 설계한 그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던 어머니의 가치관에 반발한 거예요.
그 반발이 16살에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졌어요. 유대교로 개종한 거예요.
단순히 종교를 바꾼 게 아니었어요.
WASP, 즉 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로 이루어진 당시 미국 사회의 지배 계층이 자기 세계에 등을 돌리는 첫 번째 선언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선택은 평생 번복되지 않았어요.
나중에 누스바움이 유대인 남성 알란 누스바움과 결혼했을 때, 어머니는 끝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죽을 때까지요.
그래서 누스바움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어요.
누스바움은 하버드에서 첫 여성 종신 고전학자가 될 뻔했다, 거절당했다
하버드는 그녀에게 종신직을 주지 않았고, 그 결정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어요.
1975년, 누스바움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같은 학과에서 조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죠.
커리어는 순탄해 보였어요.
하지만 1982년, 심사에서 탈락했어요. 테뉴어란 한 번 받으면 평생 해고되지 않는 정년 보장 직위예요. 학자에게는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티켓이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