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의 혀에 머리핀이 꽂힌 이유 - 로마 최고 변호사의 죽음
키케로는 가문 없는 시골 변호사로 시작했다
키케로의 가족 중에 로마 정치계에 발 들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기원전 106년, 키케로는 로마에서 100km 떨어진 아르피눔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 기준 지방 소도시 출신인 셈이에요.
로마 정치는 대대로 파트리키(patricii), 즉 귀족이 독점하던 세계였어요.
파트리키란 수백 년간 로마를 지배해온 명문가들로, 집정관 자리는 사실상 그들의 세습 자리였어요.
지방대 출신이 삼성에 지원서를 내는 게 아니라, 아예 지원 자격이 없던 시대예요.
그런데 키케로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판도를 뒤집어요.
법정 연설 하나로 로마 전체에 자기 이름을 각인시켰고, 결국 로마 최고 권좌인 집정관(consul)에 오릅니다.
집정관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과 비슷한 자리로, 로마를 1년 동안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두 명 중 한 명이에요.
이런 사람을 로마에서는 노부스 호모(novus homo), '새사람'이라고 불렀어요.
한 세대에 한두 명꼴로 나오는, 가문 없이 실력만으로 정상에 오른 인물이라는 뜻이에요.
키케로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만큼 빠르게 정상에 오른 '새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