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가 19살에 승려가 된 이유 | 9번 장원과 십만양병설의 진실
율곡 이이는 어머니를 잃고 19살에 절로 들어갔다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 불리는 사람이 청년 시절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다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은 거의 믿지 않아요.
하지만 이건 사실이에요.
율곡 이이는 1551년, 열여섯 살에 어머니 신사임당을 잃었어요.
신사임당은 당시 조선에서 손꼽히는 시인이자 화가였어요.
이이에게는 단순한 어머니가 아니라, 처음 글을 가르쳐준 스승이기도 했죠.
어머니가 죽으면 무덤 곁에 초가를 짓고 3년간 머무는 관습이 당시 조선에 있었어요.
시묘살이라고 불리는 이 풍습은, 오늘날로 치면 3년 내내 무덤 옆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슬픔을 버티는 것과 같아요.
이이는 그 3년을 다 채웠어요.
그리고 1554년, 열아홉 살 이이는 금강산 유점사로 걸어 들어갔어요.
머리를 깎고, 법명 의암(義庵)을 받고, 승려가 됐어요.
여기서 중요한 맥락이 있어요.
조선은 불교를 공식적으로 억압한 나라예요.
공자와 맹자의 사상, 즉 유학을 나라의 근본 이념으로 삼았고, 절은 아예 도성 안에 발도 들이지 못했어요.
"불교에 빠졌던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죽을 때까지 정적들의 공격 무기로 쓰였어요.
그런데 이이는 단 한 번도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모든 게 무의미해진 청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답을 그는 찾으러 간 것이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