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유배지에서 500권을 쓴 이유 | 다산 목민심서와 신유박해
정약용은 28세에 정조의 거중기를 설계했다
정조가 새 도시를 짓겠다고 했을 때, 그 핵심 기계를 그린 사람은 정약용이라는 28세 청년이었어요.
1792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그 곁에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했어요.
성곽을 쌓으려면 수십 톤짜리 화강암을 높은 곳으로 올려야 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그걸 할 기계가 없었어요.
그 문제를 풀어낸 사람이 정약용이었어요.
그가 설계한 거중기는 도르래 여러 개를 조합해 사람 힘으로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는 기계예요.
오늘날 공사 현장 크레인의 원리와 같아요.
정조는 이 거중기 덕분에 공사비 4만 냥이 절약됐다고 직접 기록했어요.
갓 서른도 안 된 신하가 국가급 신도시 공사의 핵심 기계를 설계하고, 그 결과가 왕의 글에 남은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박사학위를 막 딴 30세 청년이 정부 신도시의 핵심 인프라를 통째로 설계한 격이에요.
그런데 이 천재 청년의 삶은, 9년 뒤 완전히 뒤집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