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토어가 무한을 세다 미친 이유 — 집합론의 비극
칸토어는 무한끼리 크기를 비교했다
무한이 무한보다 크다는 말은 헛소리처럼 들려요. 그런데 1874년, 게오르크 칸토어라는 수학자가 그것을 증명했어요.
잠깐 생각해봐요. 자연수 1, 2, 3... 끝이 없죠. 0과 1 사이의 실수들, 그러니까 0.1이나 0.01이나 0.001처럼 소수점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수들도 끝이 없어요. 둘 다 무한인데, 칸토어는 이 두 무한의 크기가 다르다고 말했어요.
그 도구가 대각선 논법이에요. 자연수와 0~1 사이의 실수를 하나씩 짝지어보면, 아무리 열심히 짝을 지어도 반드시 짝 없이 남는 실수가 생겨요. 자연수의 무한보다 실수의 무한이 더 크다는 뜻이에요.
칸토어 자신도 이 결론이 충격적이었어요. 1877년, 그는 동료 수학자 리하르트 데데킨트에게 편지를 썼어요. "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증명한 것을 자기가 믿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이게 사실이에요. 칸토어는 무한에도 층위가 있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줬어요. 수학의 역사가 뒤집힌 순간이었죠.
스승 크로네커는 제자를 평생 공격했다
칸토어를 무너뜨린 것은 적이 아니라 한때 그의 박사 논문을 심사한 스승이었어요.
레오폴트 크로네커는 19세기 베를린 수학계를 지배하던 거물이었어요. 젊은 칸토어의 박사 논문을 통과시킨 사람이 바로 그예요. 그런데 칸토어가 무한 이론을 발표하자, 크로네커는 태도를 완전히 바꿨어요.
그는 칸토어를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자"라고 불렀어요. 학술지에 논문을 싣지 못하도록 막았고, 베를린대 교수직 진출도 차단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첫 직장 사수가 어느 날부터 업계 전체에 당신 험담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과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