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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571년, 보르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법관 중 하나가 사직서를 냈어요.
그리고 자기 성 안의 탑 3층으로 올라가 천장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새겼어요.
미셸 드 몽테뉴는 38세였어요.
법관이라는 자리는 오늘날로 치면 대법원 판사와 비슷한 위치예요.
판결을 내리는 사람, 다시 말해 사회에서 '답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자리였죠.
그 사람이 방 천장 들보 57개에 그리스와 라틴 고전의 문장들을 직접 새겼어요.
그중 하나는 자기 개인 메달에도 새긴 문장이었어요.
저울 그림 옆에 딱 다섯 글자, 'Que sais-je?' 프랑스어로 '내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에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 안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사람이 있잖아요.
몽테뉴가 한 것도 그거예요.
다만 그게 16세기 프랑스였고, 포스트잇 대신 들보를 깎아 새겼을 뿐이에요.

그는 자기 신장결석의 크기와 통증까지 기록했어요.
16세기에,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탑에 틀어박힌 몽테뉴는 자기 자신을 관찰 대상으로 삼았어요.
소화 습관, 성생활, 기억력이 흐려지는 감각까지요.
그렇게 쓴 글이 107편이었는데, 그 묶음에 붙인 이름이 '에세(Essais)'였어요.
프랑스어로 '시도들'이라는 뜻이에요.
완성된 논문도, 정리된 이론도 아니고, 그냥 '한번 써봤어요' 정도의 제목이에요.
그런데 이 제목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에세이'라는 장르명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16세기에 자기 배변 습관을 글로 쓴다는 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 시대의 글쓰기는 신학이거나 정치였거나 위대한 역사였어요.
'나는 오늘 배가 좋지 않았다'는 문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죠.
그런데 몽테뉴는 썼어요.
"나는 나 자신을 재료로 삼는다"고 직접 말하면서요.
이 무례한 솔직함이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형식이 되었어요.
SNS에 자기 일상을 올리는 행위를 생각해보면, 몽테뉴는 인스타그램도 블로그도 없던 시대에 '나'를 콘텐츠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에요.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게시물은 450년이 지나도 읽힌다는 거예요.

가톨릭은 그를 '개신교에 너무 관대하다'고 했고, 개신교는 그를 '결국 가톨릭 편'이라고 했어요.
몽테뉴는 정확히 그 사이에 서 있었어요.
당시 프랑스는 위그노 전쟁 한복판이었어요.
위그노 전쟁은 156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프랑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내전이에요.
쉽게 말하면, 같은 나라 사람들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36년간 서로 죽인 전쟁이에요.
몽테뉴는 가톨릭 신자였어요.
하지만 개신교 지도자 앙리 드 나바르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어요.
앙리 드 나바르는 나중에 프랑스 왕 앙리 4세가 되는 인물이에요.
1581년, 몽테뉴는 보르도 시장으로 선출됐어요.
그는 양 진영 사이에서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했어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건, 오늘날로 치면 전쟁 중인 두 나라 사이에서 혼자 통역사를 자처하는 것과 비슷해요.
그런데 1585년, 페스트가 보르도를 덮쳤어요.
전염병이 도시를 휩쓰는 상황에서 몽테뉴는 시 밖에서 임기를 마무리했어요.
그는 즉각 비난을 받았어요.
싸우는 두 친구 사이에서 '나는 중립'이라고 선언한 순간, 양쪽 다에게 미움받는 경험을 한 적 있으신가요.
몽테뉴가 살아낸 것도 그거예요.
다만 규모가 내전이었을 뿐이에요.

그가 자기 글에 붙인 이름은 '시도(Essais)'였어요.
완성이 아니라 시도. 그런데 450년이 지난 지금, 그 '시도'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있어요.
몽테뉴가 죽은 뒤, 그의 책은 셰익스피어의 서가에 꽂혀 있었어요.
파스칼, 데카르트, 니체, 에머슨이 모두 그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았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유명한 데카르트의 회의주의도, 몽테뉴가 천장에 새긴 질문에서 멀지 않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몽테뉴는 자기 글이 이렇게 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는 실제로 이렇게 썼어요. "이 책은 성실한 책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단지 나를 위한, 사적이고 가정적인 목적을 위한 것임을 밝힌다."
자기 가족에게 나를 기억시키려고 쓴 글이라고 했어요.
'완벽하게 준비되면 시작하겠다'는 사람이 있고, 일단 해보겠다며 시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몽테뉴는 완성을 주장하지 않았어요.
'시도'라고 이름 붙이고, 틀리면 고치고, 죽을 때까지 덧붙였어요.
완성을 주장한 수많은 대작들은 먼지 속에 잠겼어요.
그런데 '그냥 시도해본 글'은 지금 우리가 쓰는 모든 에세이, 모든 블로그, 모든 개인 글쓰기의 원형으로 남았어요.
'내가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천장에 새겨놓고 평생 그 답을 찾으러 다닌 사람.
그 질문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유효하다면, 몽테뉴는 아직 살아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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