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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18년, 서른 살 청년이 자신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인쇄된 책 대부분은 창고에서 폐지가 되었다.
그 책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였다.
쉽게 말하면 "세상의 본질은 욕망이고, 그 욕망은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600페이지로 풀어쓴 책이다.
당대 독자들 반응은 간단했다. 사지 않았다.
가장 신랄한 독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의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였다.
요한나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가였다. 괴테와 친구였고, 바이마르 사교계의 중심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문학상 심사위원도 맡고 있는 격이다.
그녀가 아들의 철학서를 읽고 한 말이 남아 있다.
"약제상에나 쓸 책이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요한나의 소설은 오늘날 아무도 읽지 않는다.
"아무도 안 읽을 거야"라고 조롱당한 아들의 책은 서양 철학사의 고전이 되었다.


그는 일부러 같은 시간을 골랐다.
진짜 철학이 누구 것인지 학생들이 발로 증명해줄 거라 믿었다.
학생들은 증명했다. 반대 방향으로.
1820년,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헤겔과 같은 시간대에 배치를 잡았다.
헤겔은 당시 독일 철학계의 슈퍼스타였다. 국가와 역사, 정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웅장하게 설명하는 철학으로 강의실마다 수백 명이 몰렸다.
쇼펜하우어는 헤겔 철학을 공개적으로 "지적 사기"라고 불렀다.
"저 사람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알아들을 수 없게 쓴 거거든."
그러니 자신의 강의실과 헤겔의 강의실을 나란히 두면, 진짜와 가짜가 가려질 거라 확신했다.
학생들은 헤겔 강의실로 갔다.
쇼펜하우어의 강의는 결국 폐강되었다.
흥미로운 건 그 이후다.
쇼펜하우어는 베를린을 떠났지만, 헤겔이 틀렸다는 확신을 단 한 번도 꺾지 않았다.
자신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확신이 편견인지 예언인지는, 나중에 판가름 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비관주의자의 하루는 놀라울 정도로 즐거워 보였다.
쇼펜하우어는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한 뒤 30년 가까이 거의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아침에 집필, 정오에 플루트 연주, 오후에는 두 시간 산책이었다.
산책 친구는 푸들 '아트마'였다.
아트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세계의 혼'이라는 뜻이다.
그가 개에게 붙인 이름치고는 꽤 진지하다.
저녁에는 같은 레스토랑 '잉글리셔 호프'에서 식사했다.
그냥 먹은 게 아니었다. 매번 테이블 위에 금화를 올려놓고 혼자 내기를 했다.
"오늘 저 장교들이 전쟁이나 철학 이야기를 하면 내가 가져가고, 여자 이야기만 하면 자선 기부함에 넣겠다."
기록에 따르면 금화는 대부분 기부함으로 갔다.
그가 평생 주장한 것은 이랬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쾌락은 순간이고, 고통만 진짜다.
그러니 욕망을 끊고 의지를 부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매일 맛있는 걸 먹고, 음악을 연주하고, 개와 산책하고, 금화 내기로 소소한 즐거움을 챙겼다.
SNS에 "물질은 허무"라고 올려놓고 신상 카페 후기를 꼼꼼히 쓰는 사람 같다고 하면 너무 가혹할까.
하지만 어쩌면 이게 핵심일 수도 있다.
그는 욕망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살아있는 한, 삶의 작은 리듬을 무기로 삼았다.
"알면서도 즐기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40년을 무시당한 철학자에게 마침내 팬레터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정 따위 의미 없다"고 답장했고, 그 답장을 사본으로 남겨두었다.
1851년, 그의 나이 예순셋이었다.
《부록과 보유》라는 에세이 모음집이 출간됐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짧은 글들이었다. 인생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여성에 대해, 운에 대해 쓴 잡문 모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터졌다.
유럽 전역에서 팔렸다. 젊은 독자들이 프랑크푸르트로 순례하듯 찾아왔다.
초상화 의뢰가 들어왔다. 신문 기사가 쏟아졌다.
30년 전에 폐지가 된 책의 저자가 갑자기 대륙의 지적 스타가 된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반응은 예상 가능했다.
"진리는 언제나 처음엔 조롱받고, 그다음엔 싸우고, 마지막에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세상이 뒤늦게 자신을 알아본 것이지, 자신이 변한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자신에 대한 신문 기사를 한 장도 빠뜨리지 않고 스크랩했다.
비판 기사가 나오면 즉각 반박 편지를 썼다.
"세상의 인정은 의미 없다"고 쓴 사람이 세상의 인정을 가장 꼼꼼하게 기록한 셈이다.
"좋아요 숫자 신경 안 써"라고 말하면서 알림을 끄지 못하는 사람.
우리 중에도 있지 않은가.
쇼펜하우어는 1860년, 예순두 해를 살다 아침 식사 중에 조용히 숨을 거뒀다.
푸들 아트마는 그보다 먼저 떠났다.
그의 유언장에는 개를 잃은 슬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삶이 고통이라고 70권 분량으로 증명하려 했던 사람이, 결국 개와의 이별을 가장 아파했다는 것.
어쩌면 그것 자체가 그의 철학보다 더 솔직한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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