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이 직접 당신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렀다면, 보통은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신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러 거리로 나섰다.
당시 그리스에서 델포이 신전은 오늘날로 치면 UN과 노벨위원회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권위를 가졌다.
그 신전의 신탁이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없다"고 답하자,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은 흥분해서 그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정작 소크라테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에서 갑자기 '올해의 사원'에 뽑혔는데 본인은 납득이 안 돼서 왜 자기인지 동료들에게 물어보러 다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는 아테네의 정치가를 찾아갔다. 시인을 찾아갔다. 장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매번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다들 "나는 잘 안다"고 믿었지만,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몇 개 던지면 그 확신에 구멍이 났다.
정치가는 정의가 뭔지 몰랐다. 시인은 자기 시가 왜 좋은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내린 결론은 역설적이었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는 것, 그게 유일한 지혜인 것 같다."
신탁이 맞긴 했는데, 이유가 전혀 다른 방향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 그의 손에는 철학서가 아니라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아는 '광장에서 질문만 던지는 철학자'는 갑옷을 입고 세 차례 전장을 누빈 중장보병 베테랑이었다.
동네 벤치에 늘 앉아 이야기만 하는 할아버지가 알고 보니 전쟁 영웅이었던 것과 같다.
기원전 432년 포티다이아 전투에서 그는 부상당한 동료를 직접 등에 업고 전장을 빠져나왔다.
그 동료가 바로 알키비아데스였다. 훗날 아테네 정치를 뒤흔들 문제적 인물이었지만, 그날은 소크라테스 덕에 살아남았다.
기원전 424년 델리온 전투에서는 아테네군이 무너지며 달아나는 혼란 속에서도 소크라테스만은 평소처럼 걸었다고 전해진다.
뛰지도 않고, 패닉하지도 않고,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퇴각했다.
덕분에 그 주변 병사들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한겨울 행군에서도 그는 맨발이었다.
동료들이 추위에 떨며 짚으로 발을 감쌀 때, 그는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그게 허세가 아니라 평소 생활방식 그대로였다는 게 더 놀라운 점이다.


배심원 501명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사과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국가가 밥을 사줘야 합니다."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그에게 두 가지 혐의가 붙었다.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들여온 죄'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
오늘날로 치면 '사회 혼란 조장'과 '청소년 유해 영향' 정도에 해당하는 죄목이었다.
첫 번째 투표 결과는 유죄 280 대 무죄 221이었다.
60표 차이. 생각보다 아슬아슬했다.
사과 한마디면 형량을 낮출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반성문을 내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테네를 위해 평생 봉사했습니다. 프뤼타네이온에서 국가가 저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해야 합니다."
프뤼타네이온 식사란 올림픽 우승자나 전쟁 영웅처럼 국가 최고 공로자에게만 주어지는 영예였다.
회사에서 징계 회의가 열렸는데, 반성문 대신 "오히려 저한테 보너스를 줘야 합니다"라고 말한 격이다.
분노한 배심원들은 사형에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결국 그를 죽인 건 혐의 자체가 아니라, 그 마지막 말이었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발명한 도시가, 자유로운 질문으로 시민을 깨우치려 했던 사람을, 민주적 투표로 처형했다.
이 아이러니를 소크라테스 자신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감옥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배는 항구에 대기 중이었고, 간수도 매수가 끝난 상태였다.
소크라테스는 돌아앉았다.
부유한 친구 크리톤은 완벽한 탈출 경로를 준비했다.
테살리아까지 가는 길목의 사람들도 손을 써두었다.
"지금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그는 소크라테스를 흔들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달랐다.
"법이 부당하더라도, 내가 법을 어기면 내가 평생 말해온 것이 거짓이 된다."
자기 철학을 목숨값으로 팔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마지막 날이 왔다.
독당근 즙이 담긴 잔이 그에게 건네졌다. 독당근은 마시면 발끝부터 서서히 마비가 올라오다가 심장까지 멈추는 독이었다.
친구들은 울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말했다.
"울음을 그치게. 나는 이를 위해 여자들을 내보냈거늘."
그리고 잔을 들었다.
기록에 남은 그의 마지막 말은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빚이 있으니 잊지 말고 갚아주게."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의 치유의 신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순간에 오래된 빚 하나를 처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 한 권 쓰지 않은 이 남자의 이야기는, 그의 제자들이 낱낱이 받아 적은 덕분에 240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
그가 끝내 지키려 했던 것이 진짜로 무엇이었는지, 아마 그 마지막 부탁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