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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피터 싱어는 농장에 가본 적도 없었다.
그저 점심 식탁에서 질문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그 질문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을 흔들었다.
1970년대 초, 싱어는 옥스퍼드 대학원생이었다.
어느 날 채식주의자 친구와 학생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친구가 고기를 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싱어는 그 자리에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도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우리는 개의 고통은 신경 쓰면서, 돼지의 고통은 외면하는 걸까?"
1975년 그가 펴낸 《동물 해방》은 세상에 충격을 줬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책은 전 세계 채식·비건 운동과 동물권 관련 법안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다.
싱어는 사실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철학자다.
권리가 아니라 '고통의 총량'으로 모든 것을 계산하는 공리주의자가 동물권 운동의 아버지가 된 셈이다. 공리주의란 쉽게 말해, 가장 많은 존재에게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선택이 곧 옳은 선택이라는 철학이다.


출근길에 물웅덩이에 빠진 아이를 본다면, 새 구두가 망가져도 뛰어들 것이다.
그런데 왜 지구 반대편에서 죽어가는 아이에게는 무관심한가.
싱어는 1972년 논문 《기근, 풍요, 도덕》에서 이 질문을 철학으로 만들었다.
논리는 단순하다. 내 앞의 아이를 구하지 않는 게 비도덕적이라면, 멀리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하지 않는 것도 똑같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물웅덩이 논증'이다.
이 논문은 효율적 이타주의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효율적 이타주의란, 기부를 할 때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가장 효과적인 곳을 찾자는 운동이다.
오늘날 실리콘밸리 테크 종사자들이 연봉의 10~30%를 기부하는 문화가 여기서 나왔다.
싱어 자신도 실제로 소득의 상당 부분을 기부했다.
하지만 그가 프린스턴 대학 교수가 되고 나서,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신 논리대로라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만 남기고 전부 기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싱어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다.
"나는 충분히 기부하지 않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다.
논리는 완벽했지만, 실천은 그 논리를 따라가지 못했다.


1999년 프린스턴 대학 앞에 휠체어를 탄 시위대가 모였다.
그들이 막으려 한 것은 한 철학자의 강의실 입장이었다.
싱어는 1979년 《실천윤리학》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다.
심각한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신생아를 부모의 동의 하에 안락사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선이라는 그의 공리주의 논리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한 결과였다.
장애인 권리 단체 'Not Dead Yet', 번역하면 '아직 죽지 않았다'가 들고 일어섰다.
독일에서는 강연 도중 청중이 단상을 점거해 강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나치의 우생학과 같은 결론이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싱어는 완강하게 반박했다.
나치는 인종의 우월함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자신은 오직 '고통의 최소화'라는 기준만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출발점이 달라도 도달한 곳이 비슷해 보인다는 것, 그게 가장 불편한 지점이었다.
논리적으로는 반박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선뜻 동의하기도 꺼려지는 그 감각.
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가슴이 거부하는 그 충돌.
싱어의 철학을 처음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이 지점에서 멈춘다.


피터 싱어는 평생 이렇게 말했다.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숫자로 판단하라.
그런데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는 계산기를 내려놓았다.
싱어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알츠하이머는 기억이 서서히 지워지는 병으로, 말기에는 가족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싱어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어머니를 위한 전문 간병인을 고용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그 돈은 다른 곳에 써야 했다.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돈이었다.
숫자로 계산하면, 그 선택은 명백히 비효율적이었다.
뉴요커 인터뷰에서 기자가 직접 물었다.
싱어는 잠시 침묵한 뒤에 답했다.
"아마도 내가 하는 일이 내 철학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50년 동안 감정이 아닌 논리로 도덕을 판단하라고 가르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순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 곁에서 간병인을 내보내지도 않았다.
이것이 그의 철학의 실패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감정은 배제하라"고 외쳐온 철학자가,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솔직하게 인정한 순간일까.
어쩌면 우리가 싱어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논리가 틀렸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의 논리가 맞는데도, 우리 역시 어머니 앞에서 계산기를 내려놓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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