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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앙드레 베유는 훗날 이렇게 썼어요.
"감옥에 다시 갈 수만 있다면. 그때만큼 수학이 잘된 적이 없었다."
1939년, 베유는 핀란드에서 소련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어요.
사형 선고 직전까지 갔던 그 독방에서, 그는 20세기 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중 하나를 완성했어요.
수학에는 리만 가설이라는 160년 넘게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어요.
베유는 그것과 구조가 완전히 같은 유사체를 다른 수학 공간에서 증명해냈어요.
에베레스트를 오르지 못한 사람이 똑같은 지형을 가진 가상의 산을 먼저 정복해서 "이 방향으로 오르면 돼"라고 보여준 것처럼요.
시험 전날 밤, 오히려 머릿속이 이상하게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베유에게 감옥은 마감이 아니라 그런 해방의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자유로워진 뒤에 오히려 그 집중력을 그리워했어요.

베유 가문에는 천재가 둘 있었어요.
오빠는 수학으로 세상을 바꿨고, 여동생은 스스로 죽어서 세상을 바꿨어요.
앙드레가 징집을 피해 핀란드와 미국으로 떠나던 그 시기, 여동생 시몬 베유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어요.
시몬은 철학자이자 신비사상가였는데,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국민이 굶주리는 동안 자신만 배불리 먹는 건 배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국에서 배급량보다 더 적게만 먹기 시작했어요.
결국 1943년, 그녀는 서른네 살에 사망했어요.
오빠 앙드레는 프린스턴에서 강의하고 있었어요.
역사는 재미있는 장난을 쳤어요.
'생존한 천재' 앙드레는 수학자들의 수학자로 기억됐지만, '죽은 여동생' 시몬은 알베르 카뮈와 T.S. 엘리엇이 유고 출판에 직접 나설 만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 됐어요.
성공과 헌신, 생존과 희생은 같은 저울에 올라가지 않아요.

프랑스 수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수학자는 태어난 적이 없어요.
이름은 니콜라 부르바키, 직업은 수학자, 존재 여부는 완전한 허구예요.
1935년, 앙드레 베유를 포함한 젊은 수학자 그룹이 모였어요.
당시 프랑스 수학 교과서가 너무 낡았다고 생각한 그들은 가짜 인물을 만들어 그 이름으로 새 교과서를 쓰기로 했어요.
동료들끼리 장난으로 만든 익명 계정이 업계 표준 교재가 된 셈이에요.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부르바키 이름으로 학회 가입 신청서를 내고, 결혼 청첩장을 돌리고, 나중엔 부고까지 발표했어요.
이 프로젝트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됐고, 그 교과서 시리즈는 프랑스 수학의 언어와 체계를 완전히 다시 썼어요.
장난처럼 시작한 이 허구의 수학자 뒤에 진짜 저자들이 누구인지, 세상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됐어요.
20세기 수학을 지배한 이름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에요.

프랑스 수학의 미래를 설계한 남자는 답을 파리가 아니라 인도 경전의 한 구절에서 찾았어요.
1930년대, 베유는 인도의 알리가르 무슬림 대학교에서 2년간 강의했어요.
그는 거기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바가바드 기타를 원문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기타는 힌두교의 핵심 경전으로, 핵심 가르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돼요.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행위 자체에 집중하라."
베유는 이게 순수수학 연구와 완전히 같다고 느꼈어요.
이 증명이 어디에 쓰일지,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지 묻지 않는 것.
수학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냥 하는 것.
하지만 아이러니가 있어요.
서양 수학을 가장 엄밀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재정의하려 했던 사람이, 자신의 수학 철학만큼은 동양 경전에서 가져왔다는 거예요.
결국 그는 이 철학을 평생 놓지 않았어요.
감옥에서도, 프린스턴에서도, 부르바키 회의실에서도.
서양 수학의 기초를 다시 쓴 사람의 수학관이 인도 경전 한 구절에서 왔다는 사실, 베유 본인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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