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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존 내시는 자기 인생 최고의 업적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1950년, 스물한 살의 내시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단 27쪽짜리 박사논문을 제출했다.
논문의 내용은 이랬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자기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것이 내시 균형이다. 협상 테이블, 핵 억제 전략, 경매 설계까지 오늘날 모든 곳에서 쓰이는 개념이다.
그런데 지도교수조차 처음엔 이 논문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했다.
정작 내시 본인도 이 논문을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순수수학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었고, 이 27쪽은 그냥 제출해야 하는 과제에 가까웠다.
시험 때 대충 쓴 답안이 만점을 받고, 정성 들인 답안은 감점당하는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경제학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개념 중 하나가, 본인이 가장 가볍게 여겼던 논문에서 나왔다.
그것이 내시 이야기의 첫 번째 아이러니다.

합리적 선택의 수학적 증명을 만든 남자가, 외계인이 자신에게 암호를 보내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1959년, MIT 교수로 재직 중이던 내시는 동료들에게 갑자기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외계인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있어."
동료들은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그는 곧 편집형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망상이 현실과 뒤섞이는 병이다.
MIT 교수직을 잃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후 거의 30년간 내시는 프린스턴 캠퍼스를 혼자 배회하며 칠판에 수식을 가득 적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되었다.
학생들은 그를 "팬텀"이라 불렀다.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
한때 프린스턴 최고의 수재였던 사람이, 이제 그 캠퍼스에서 유령 취급을 받았다.
요리 레시피를 완벽하게 쓸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은 냄비를 잡지 못하는 셰프를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 위에 이론을 세운 사람이, 자기 자신의 합리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것이 두 번째 아이러니다.

존 내시는 약 대신 논리를 선택했다.
환청이 들릴 때마다 그것이 거짓임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로 한 것이다.
항정신병 약물은 증상을 줄여줬지만, 동시에 사고력을 둔하게 만들었다.
수학자에게 사고력은 존재 이유 그 자체다.
결국 내시는 약 복용을 중단했다.
1980년대부터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환청이 들리면 이렇게 자문했다. "이게 진짜로 가능한 일인가?"
망상이 밀려오면 그 논리적 모순을 하나씩 짚어나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이건 진짜가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는 삶.
그는 그 과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치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의학계에서도 극히 드문 사례로 기록된다. 약이 아닌 의지적 논증으로 증상을 통제한 사람.
광기가 빼앗아갔던 바로 그 합리성이, 결국 광기를 이기는 무기가 되었다.
그가 30년간 지켜온 것은 수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현실을 의심하지 않으려는 집요한 의지였다.

1994년 스톡홀름 시상식장에서 존 내시 옆에 앉은 여성은, 한때 그를 떠났다가 스스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아내 알리시아는 내시의 병세가 심해지자 1963년 이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1970년대, 갈 곳 없이 캠퍼스를 떠도는 그를 다시 자기 집에 들였다.
법적으로는 남남이었지만, 그녀는 그를 돌봤다.
그리고 44년 전에 쓴 27쪽짜리 논문이, 1994년 노벨 경제학상으로 돌아왔다.
20대에 쓴 리포트가 60대에 와서 상을 받는 상황.
내시는 시상식 자리에서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01년 재혼했다.
그리고 2015년, 노르웨이에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벨상을 받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함께 세상을 떠났다.
떠났던 사람이 돌아왔고, 44년 전의 논문이 비로소 인정받았으며, 두 사람은 같은 순간에 함께 떠났다.
어떤 소설가도 이렇게는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이론은 "모든 사람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알리시아가 돌아온 이유는 그 어떤 균형 방정식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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