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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슴도치와 여우는 아이작 벌린이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둘로 나눈 비유예요. 고슴도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큰 원리로 꿰어 설명하려 하고, 여우는 세상의 여러 다른 모습을 하나로 묶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요.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세상을 대하는 두 태도를 보여 주는 그림이에요.
친구들 중에 이런 사람 있죠.
"결국 인생은 돈이야" 하며 모든 일을 한 가지 원리로 딱 정리하는 친구요.
반대로 "상황마다 다르지" 하며 이 경우 저 경우를 잔뜩 아는 친구도 있고요.
아이작 벌린은 바로 이 두 유형을 고슴도치와 여우로 불렀어요.
이 비유의 뿌리는 아주 오래됐어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가 남긴 한 조각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a fox knows many things, but a hedgehog knows one big thing'(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
여우는 온갖 꾀와 지식을 잔뜩 알지만, 고슴도치는 몸을 둥글게 마는 단 하나의 재주로 살아가죠.
벌린은 이 짧은 문장을 빌려,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 체계로 묶어 내는 사람(고슴도치)과 다양한 것들에 두루 이끌리는 사람(여우)을 나눴어요.
아이작 벌린은 1909년 러시아 제국령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유대계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 페트로그라드에서 1917년 2월 혁명을 직접 목격했고, 1920년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옮겨 갔어요.
뒷날 옥스퍼드에서 사회·정치이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고, 1997년 세상을 떠났어요.
'고슴도치와 여우'는 원래 거대한 이론서가 아니었어요.
벌린이 쓴, 소설가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다룬 짧은 에세이였는데, 출판업자 조지 바이덴펠트가 1953년 이 제목을 붙여 책으로 펴내면서 널리 알려졌어요.
유명한 제목이 먼저 기획된 게 아니라, 글의 내용에 맞춰 나중에 이 이름이 붙은 셈이에요.
여기서 벌린이 던진 재미있는 물음이 나와요.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는 여우였을까요, 고슴도치였을까요?
벌린의 답은 단순한 편 가르기가 아니었어요.
벌린은 톨스토이가 본성상 여우였다고 봤어요.
인간 세상의 온갖 세부와 다양한 모습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려 낸 작가였으니까요.
그런데 톨스토이 자신은 역사를 하나의 큰 법칙으로 설명하는 고슴도치가 되고 싶어 했어요.
여우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고슴도치라고 믿고 싶어 한 사람, 그 어긋남이 톨스토이의 역설이라는 거예요.
사람을 두 상자에 나눠 넣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에서 두 태도가 부딪치는 모습을 본 거죠.
벌린을 이야기할 때 고슴도치와 여우만큼 중요한 게 자유에 관한 생각이에요.
1958년 옥스퍼드 교수 취임 강연 '두 가지 자유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그는 자유를 두 종류로 나눴어요.
| 구분 | 소극적 자유 | 적극적 자유 |
|---|---|---|
| 뜻 | ~로부터의 자유 | ~를 향한 자유 |
| 핵심 | 남·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 | 스스로 주인이 되어 나를 실현함 |
| 예 | 아무도 내 방에 못 들어옴 |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결정함 |
소극적 자유는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자유예요.
문을 잠그면 누구도 못 들어오는 것처럼요.
적극적 자유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유고요.
둘 다 소중한 가치예요.
벌린이 이 구분을 꺼낸 이유가 있어요.
20세기 독재정권들이 '해방'을 명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걸 지켜봤거든요.
'진짜 너를 위한 거야'라는 말로 개인을 짓누르는 방식이요.
그는 자유라는 고귀한 말이 어떻게 폭정을 옹호하는 데 쓰이는지 이해하려 했어요.
벌린을 두고 자주 하는 오해가 있어요.
그가 적극적 자유 자체를 나쁘다고 반대했다는 거예요.
사실은 아니에요.
벌린은 두 자유를 모두 진정한 가치로 인정했어요.
그가 경계한 건 적극적 자유가 왜곡되는 방식이었어요.
'진정한 자아(true self)'라는 그럴듯한 말을 앞세워, "네가 지금 원하는 건 진짜 네가 아니야, 우리가 아는 진짜 너는 이걸 원해" 하며 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논리요.
여기서 벌린의 또 다른 생각인 가치 다원주의가 이어져요.
세상엔 진짜 소중한 가치가 여럿이고, 서로 부딪칠 때 '단 하나의 올바른 답'은 없다는 거예요.
그가 자유의 두 얼굴을 짚은 말이 널리 인용돼요.
'Freedom for the wolves has often meant death to the sheep'(늑대에게 주어진 자유는 종종 양의 죽음을 뜻했다).
강한 자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주면 약한 자가 다친다는 뜻이에요.
자유는 좋은 말이지만, 늘 누구의 자유인지 물어야 한다는 거죠.
고슴도치와 여우는 세상을 하나의 원리로 꿰려는 태도와 여럿을 그대로 끌어안는 태도를 가른 비유예요.
벌린은 톨스토이를 예로 들어, 한 사람 안에서도 두 태도가 부딪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누되, 어느 하나만 옳다고 하지 않았어요.
좋은 말이 폭정을 가리는 데 쓰일 수 있으니 '누구의 자유인가'를 늘 물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벌린이 우리에게 남긴 물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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