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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900개 명제 논쟁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스물세 살에 세상의 온갖 철학과 종교를 900개 문장으로 정리해 놓고 '누구든 로마로 와서 반박해 보라'고 내건 공개 도전이에요. 그런데 토론은 열리지도 못한 채 교황이 명제를 전부 이단으로 단죄했고, 이 책은 교회가 통째로 금지한 최초의 인쇄본이 되었어요.
반 친구들 앞에서 "내가 정리한 900가지 주장이 여기 다 있으니, 틀렸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나와서 반박해 봐. 멀리서 오는 사람 차비는 내가 낼게"라고 큰소리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1486년, 스물세 살의 이탈리아 귀족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실제로 한 일이 딱 이랬어요.
피코는 종교·철학·자연철학·마술에 걸친 900개의 테제(900 Theses)를 써서, 로마에 오는 모든 도전자 앞에서 이를 변호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그해 12월에는 이 명제 묶음을 『Conclusiones philosophicae, cabalasticae et theologicae』라는 제목으로 인쇄해 내놓았고, 토론하러 로마에 오는 학자들의 여비를 자기 돈으로 대겠다고까지 했어요.
요즘으로 치면 "내 논제 900개, 반박 환영, 참가비는 내가 부담"이라고 붙인 공개 토론 초대장이었던 셈이에요.
피코가 명제를 900개나 쓴 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는 서로 다른 옛 지혜들이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믿었거든요.
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헤르메스주의, 카발라처럼 겉보기엔 따로 노는 전통들을 한자리에 모아 화해시키려 했어요.
이렇게 여러 갈래를 하나로 엮는 태도를 종합주의(syncretism)라고 불러요.
900개 안에는 완전한 물리학 체계를 설명하는 72개의 명제도 들어 있었어요.
피코는 이 900개 명제가 '모든 지식을 발견하기 위한 완전하고 충분한 토대'라고 믿었어요.
서로 싸우던 학파들을 한 식탁에 앉히려 한 그의 태도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프린켑스 콘코르디아이(Princeps Concordiae)', 곧 '조화의 군주'라고 불렀어요.
이건 그의 가문 영지 이름 콘코르디아를 이용한 말장난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야심 찬 대회는 한 번도 열리지 못했어요.
1487년 2월,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토론을 중단시키고 900개 명제가 정통 교리에 맞는지 심사할 위원회를 세웠거든요.
처음에는 13개의 명제가 문제로 지목되어 단죄되었는데, 결국에는 900개 전부가 단죄되었어요.
단죄된 명제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어요.
'유한한 시간에 지은 대죄는 영원한 벌이 아니라 일시적인 벌만 받아 마땅하다.'
이런 생각들이 훗날 프로테스탄트의 견해를 미리 담고 있다고 해서, 피코를 '원형 프로테스탄트(proto-Protestant)'라 부르기도 해요.
피코는 1489년 자신을 변호하는 『Apologia』를 써서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쳤어요.
하지만 교황은 이 글을 돌려 읽게 한 것마저 문제 삼아 종교재판소를 세웠고, 피코는 이 변론서까지 철회해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900개 명제 책은 교회가 통째로 금지한 최초의 인쇄 서적이 되었고, 사본은 거의 다 불태워졌어요.
인쇄술이 막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던 시절, 인쇄된 책 한 권이 통째로 금서가 된 첫 사건이었던 거예요.
피코가 계획한 것과 실제로 벌어진 일을 견줘 보면 이래요.
| 피코의 계획 | 실제 결과 |
|---|---|
| 로마에서 공개 토론 개최 | 교황이 1487년 2월 중단 |
| 900개 명제를 직접 변호 | 위원회가 900개 전부 단죄 |
| 온 지혜를 하나로 종합 | 책은 금지, 사본 소각 |
이후 피코는 1488년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붙잡혀 뱅센에 갇혔고, 로렌초 데 메디치가 주도한 제후들의 중재로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그를 풀어 주었어요.
교황의 견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1493년 새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즉위한 뒤였어요.
900개 명제 논쟁은 한 젊은 학자가 세상의 모든 지혜를 한자리에 모으려다 시대의 벽에 부딪힌 이야기예요.
토론은 끝내 열리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두 가지를 또렷이 보여 줘요.
하나는 서로 다른 전통을 억지로라도 화해시키려 한 르네상스 특유의 대담한 상상력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상상력이 교회의 검열과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예요.
특히 '인쇄된 책이 통째로 금지된 첫 사례'라는 대목은 곱씹어 볼 만해요.
인쇄술이 지식을 널리 퍼뜨리기 시작하자, 그 지식을 관리하려는 힘도 곧바로 따라붙었다는 뜻이니까요.
900개 명제 논쟁은 스물세 살의 피코가 세상의 온갖 철학과 종교를 900개 명제로 묶어 '누구든 반박해 보라'며 로마로 초대한 사건이에요.
목표는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로 화해시키는 것이었지만,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토론을 막고 명제를 모두 단죄하면서 이 책은 교회가 통째로 금지한 최초의 인쇄본이 되었어요.
사본이 불태워지고 책이 통째로 금서가 된 이 사건 하나에, 르네상스의 야심과 그 시대의 한계가 함께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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