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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1486년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서, 인간만은 신에게 정해진 본성을 받지 못한 유일한 피조물이라고 선언했어요.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로 짐승처럼 낮아질 수도, 천사처럼 높아질 수도 있는 열린 존재랍니다.
새 학기 첫날, 선생님이 "너희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원하는 데 앉아라"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할 거예요.
지금부터 볼 글은 바로 그런 말을, 그것도 온 인류를 향해 던진 글이에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n on the Dignity of Man)』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젊은 귀족 철학자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1486년, 겨우 스물세 살에 쓴 글이에요.
원래는 로마에서 벌이려던 큰 토론을 여는 말로 준비한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그 자체로 '르네상스의 선언문(Manifesto of the Renaissance)'이라 불리는,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글이 되었어요.
이 글은 플라톤을 잇는 신플라톤주의와, 중세 대학에서 가르치던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철학을 한데 엮었어요.
서로 다른 전통을 화해시키려던 젊은 학자의 야심이 담긴 셈이죠.
짧은 연설 한 편이 한 시대의 인간관을 대표하게 된 거예요.
이 글의 심장은 신이 처음 만든 인간에게 건네는 말 속에 있어요.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는 신이 태어날 때부터 본성과 자리를 정해 주었어요.
사자는 사자답게, 돌은 돌답게 살도록요.
그런데 인간에게만은 고정된 자질을 주지 않고, 대신 '미결정성(indeterminatezza)', 곧 아직 정해지지 않은 열린 상태를 주었다고 피코는 말해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다른 존재가 이미 완성된 조각상으로 태어난다면, 인간은 한 덩어리의 점토로 태어나요.
그 점토를 어떤 모양으로 빚을지는 각자에게 맡겨졌고요.
피코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벼려낸다고 표현했어요.
사람 안에는 '온갖 종류의 씨앗들'이 들어 있는데, 그중 어떤 씨앗에 물을 주느냐에 따라 짐승처럼 낮아질 수도 있고 더 높은 존재로 자라날 수도 있다는 거예요.
태어난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야말로 백지 같은 상태라는 뜻이죠.
여기서 놀라운 주장이 나와요.
피코에게 인간은 천사보다도 존엄한 존재예요.
천사가 더 높고 완전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이유는 '선택'에 있어요.
천사는 이미 높은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짐승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본성대로만 살고요.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고를 수 있어요.
바로 그 선택의 자유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 존재 | 본성 | 자리 옮기기 |
|---|---|---|
| 짐승 | 태어날 때 정해짐 | 못 함 |
| 천사 | 높은 자리에 고정됨 | 안 함 |
| 인간 | 정해지지 않음 | 스스로 정함 |
표로 보면 분명해져요.
존엄함의 근거는 '얼마나 높으냐'가 아니라 '스스로 정할 수 있느냐'예요.
인간의 자유의지(arbitrio) 그 자체가 존엄의 뿌리인 셈이죠.
완성된 채로 붙박인 존재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더 귀하다는 발상이 이 연설의 힘이에요.
그렇다고 피코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한 건 아니에요.
학자 피에르 체사레 보리에 따르면, 피코는 이 연설에서 인간의 소명을 세 단계로 그려요.
먼저 도덕적으로 자신을 바꾸고, 다음으로 지적으로 탐구하며, 마침내 절대적 실재와 하나 되는 완성에 이른다는 거예요.
즉 자유란 위로 오르기 위해 열린 문이에요.
씨앗 비유로 돌아가면, 물질 쪽 씨앗을 키우면 아래로 내려가고, 영 쪽 씨앗을 키우면 위로 올라가요.
어느 쪽으로 갈지 방향을 정하는 손잡이가 바로 각자의 의지고요.
흥미로운 점은, 피코가 이 상승의 길을 특정 종교나 문화에만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는 이 길이 모든 전통에서 다시 발견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여겼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디에 있든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믿음이죠.
훗날 17세기 프랑스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도 인간을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피코의 생각을 이어받은 거예요.
다만 파스칼에게 그 중간 지점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에 가까웠다면, 피코에게 중간은 우리가 자신의 자리를 직접 고르게 해 주는 '의지' 그 자체였어요.
같은 문장처럼 보여도 담긴 뜻은 사뭇 달랐던 거죠.
그래서 이 연설이 오래 읽히는 거예요.
태생이나 신분이 사람을 결정한다고 믿던 시대에, 피코는 "네가 무엇이 될지는 네가 짓는다"고 말했으니까요.
정해진 답 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가야 하는 우리에게도, 이 오래된 선언은 여전히 조용히 말을 걸어와요.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은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1486년에 쓴 짧은 글이지만, 인간을 보는 눈을 바꿔 놓았어요.
핵심은 세 가지예요.
첫째, 인간만은 정해진 본성 없이 태어나 스스로를 빚어요.
둘째, 그 선택의 자유 때문에 인간은 천사보다도 존엄해요.
셋째, 그 자유는 도덕과 탐구를 거쳐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방향을 품어요.
"본성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한마디를, 이 세 걸음과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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