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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위버멘쉬(Übermensch)는 남이 정해준 규칙에만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어제의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사람을 가리켜요. '초인'이라 번역되지만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자기극복의 태도를 뜻해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년부터 1900년까지 산 사람)가 만든 말이에요.
독일어로 '위버(über)'는 '넘어서', '멘쉬(Mensch)'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합치면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쯤 돼요.
게임을 떠올려 볼까요.
처음엔 게임이 정해 준 규칙대로만 플레이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테이지를 새로 만들어 내는 친구가 있죠.
위버멘쉬는 그 두 번째에 가까워요.
부모님·학교·사회가 '이게 옳아'라고 준 답을 그냥 받아 삼키는 대신, '나는 무엇을 좋다고 여길까'를 스스로 묻고 그 가치를 직접 세우며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자신으로 넘어가는 사람이에요.
니체는 이걸 자기극복(Selbstüberwindung)이라고 불렀어요.
니체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독일어로 'Gott ist tot', 곧 '신은 죽었다'예요.
오해하기 쉬운데, 이건 니체가 신을 죽이고 싶어 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독일어 위키백과도 니체는 신을 없애자고 선동한 게 아니라 시대를 지켜본 '관찰자'였다고 짚어요.
그러니까 니체가 본 것은 이런 풍경이에요.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신이 정해 준 규칙'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그 믿음이 예전만큼 힘을 잃었다는 거죠.
그러면 나침반이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잃기 쉬워요.
바로 여기서 위버멘쉬가 등장해요.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적었어요.
'Tot sind alle Götter: nun wollen wir, dass der Übermensch lebe.' 우리말로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위버멘쉬가 살아있기를 바란다'예요.
밖에서 주어진 답이 흐려졌으니, 이제는 사람이 스스로 자기 가치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에요.
니체는 위버멘쉬의 정반대편에 '최후의 인간'(letzter Mensch)이라는 사람을 세워요.
최후의 인간은 위험도 도전도 싫어하고, 그저 편하고 오래 사는 '행복'만 바라며, 남들과 똑같아지기를 원하는 나약한 사람이에요.
둘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달라요.
| 최후의 인간 | 위버멘쉬 |
|---|---|
| 편안함과 안전만 바람 | 도전과 자기극복을 받아들임 |
| 남들과 똑같아지려 함 | 자기만의 가치를 세움 |
| 주어진 규칙에 안주 | 스스로 의미를 만듦 |
쉽게 말하면, 넘어질까 봐 자전거를 아예 안 타는 쪽이 최후의 인간, 몇 번 넘어져도 다시 올라타 새 길을 달려 보는 쪽이 위버멘쉬예요.
니체는 뒤쪽을 응원한 거죠.
가장 흔한 오해예요.
'초인'이라는 번역 탓에 위버멘쉬를 힘센 영웅이나 남을 짓밟는 지배자, 심지어 우월한 인종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어요.
실제로 니체가 죽은 뒤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오빠의 원고를 자기 방식대로 편집하고 나치 정권과도 가까이 지내면서, 니체가 마치 나치 사상의 원조인 것처럼 왜곡됐어요.
하지만 이건 사실과 어긋난다는 게 학계의 다수 견해예요.
니체 본인은 반유대주의를 여러 번 대놓고 비판했거든요.
오늘날 니체 연구에서는 위버멘쉬를 정치적 지배자나 생물학적 우월 인종으로 읽는 것을 '오도된'(irreführend) 해석으로 봐요.
위버멘쉬가 원하는 힘은 남을 누르는 지배력이 아니라 '할 수 있음', 곧 자기를 풍요롭게 키우고 넘어서는 힘이에요.
남을 이기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를 이기는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돼요.
위버멘쉬는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밖에서 주어진 가치에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의 의미와 규칙을 만들며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는 태도예요.
니체는 '신은 죽었다'며 옛 나침반이 흐려진 시대를 관찰했고, 그 자리에서 편안함만 좇는 '최후의 인간' 대신 자기극복에 나서는 위버멘쉬를 응원했어요.
'초인'을 지배자나 우월 인종으로 읽는 건 오해예요.
위버멘쉬가 이기려는 상대는 남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 자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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