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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에서 사람과 기계, 자연과 문화를 가르던 경계를 허물어, 페미니즘과 과학기술과 생태를 한자리에 묶어 생각한 미국의 현대 철학자예요.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어요." 도나 해러웨이가 1985년에 쓴 '사이보그 선언'을 닫는 유명한 문장이에요.
사이보그라고 하면 영화 속 반은 사람, 반은 기계인 전사가 먼저 떠오르죠.
그런데 해러웨이가 말한 사이보그는 훨씬 가까이 있어요.
안경을 쓰고, 보청기로 소리를 듣고, 스마트폰에 전화번호와 추억을 대신 저장하는 우리도 이미 기계와 한 몸이거든요.
사람과 기계는 칼로 자르듯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것, 이 이야기가 글 전체의 출발점이에요.
오래된 철학은 세상을 자꾸 둘로 갈랐어요.
사람과 기계, 사람과 동물, 자연과 문화처럼요.
그리고 한쪽은 위, 한쪽은 아래라고 줄을 세웠죠.
해러웨이는 바로 이 줄 세우기가 차별의 뿌리라고 봤어요.
여성은 '자연'에 묶어 감정적이라 하고, 남성은 '문화'에 두어 이성적이라 하는 식으로요.
사이보그는 이 경계를 흐려 버려요.
어느 쪽도 아니고 양쪽 모두니까요.
| 둘로 가르던 옛 생각 | 해러웨이가 던진 물음 |
|---|---|
| 사람과 기계 | 스마트폰 없는 나는 온전한 나일까요 |
| 사람과 동물 | 함께 사는 반려견은 가족이 아닐까요 |
| 자연과 문화 | 사람이 바꿔 놓은 지구를 순수한 자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
경계가 흐려지면 누가 위고 누가 아래라는 줄 세우기도 함께 무너져요.
해러웨이가 페미니즘의 도구로 굳이 사이보그를 고른 까닭이 여기 있어요.
해러웨이는 원래 생물학을 공부한 과학자였어요.
그래서 과학을 적으로 밀어내지 않아요.
대신 과학이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지를 물었죠.
아무 데도 서 있지 않은 척하는 객관성보다, 내가 어디에 서서 보는지를 솔직히 밝히는 앎이 더 정직하다고 했어요.
나중에는 시선을 강아지에게 돌려요.
2003년 '반려종 선언'에서, 사람과 개는 수천 년을 서로 길들이며 함께 변해 왔다고 했어요.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키운 게 아니라요.
2016년 책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는 더 나아가요.
망가진 지구를 버리고 떠나는 대신, 벌레와 식물과 동물 사이에 끈질기게 얽혀 살자고 했죠.
기계에서 시작한 생각이 강아지를 지나 지구 전체로 넓어진 거예요.
생성형 AI에게 말을 걸고, 스마트워치가 심장 박동을 세어 주는 지금, 사람과 기계의 경계는 해러웨이가 글을 쓰던 1985년보다 훨씬 더 흐릿해졌어요.
그래서 그의 물음은 오히려 지금 더 또렷하게 들려요.
기술은 우리를 망치는 적도, 모든 걸 풀어 줄 구원자도 아니에요.
누구의 손에서, 누구를 위해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도구일 뿐이죠.
깔끔한 답 대신 함께 고민할 거리를 건네는 철학이에요.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는 무서운 로봇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이미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그는 사람과 기계, 사람과 동물, 자연과 문화를 갈라 줄 세우던 낡은 습관을 흔들어, 페미니즘과 과학과 생태를 한 묶음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다음에 스마트폰을 손에 쥘 때, 나와 기계의 경계가 정말 또렷한지 한 번 떠올려 보면 이 철학이 한층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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