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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가나와 영국 두 나라에 뿌리를 둔 현대 정치철학자예요. 사람은 저마다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온 세계의 낯선 사람에게까지 서로 책임이 있다는 '세계시민주의'를 알기 쉽게 풀어낸 사람입니다.
1954년에 태어난 아피아는 어릴 적 가나의 도시 쿠마시에서 자랐어요.
아버지는 가나 사람이자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영국 사람이었지요.
한 집안 안에 두 나라, 두 문화가 같이 살았던 거예요.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며 자녀들에게 "너희는 세계의 시민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당부를 남겼다고 해요.
어린 아피아의 마음에 박힌 이 한마디가 훗날 그의 철학 전체를 끌고 가는 씨앗이 됩니다.
지금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가르치고, 신문에 독자들의 윤리 고민을 받아 답해 주는 칼럼도 오래 써 왔어요.
'세계시민주의'는 어려워 보이지만 단어를 쪼개 보면 쉬워요.
옛 그리스말로 '코스모스'는 세계, '폴리테스'는 시민이에요.
합치면 '세계의 시민'이지요.
2천 년도 더 전에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물음에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답했다고 전해져요.
아피아가 말하는 세계시민은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은 사람이에요.
하나는 내 동네, 내 가족, 내 나라를 아끼는 마음.
또 하나는 지구 반대편 한 번도 못 본 사람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돌보는 마음이에요.
우리 반을 목청껏 응원하면서도, 옆 반 친구가 넘어지면 달려가 일으켜 주는 것과 비슷해요.
둘 중 하나를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게 핵심이에요.
아피아는 정체성을 깊이 파고든 철학자예요.
종교, 국적, 인종, 사는 형편, 문화 같은 이름표 말이에요.
우리는 보통 이런 이름표가 태어날 때부터 딱 정해져서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피아는 이렇게 물어요.
정체성은 정말 바위처럼 단단한 걸까요?
그는 정체성을 옷이나 이름표에 빗대요.
옷은 내가 누구인지 보여 주지만, 너무 꽉 끼면 나를 가두는 상자가 되기도 하지요.
정체성은 진짜이고 소중하지만, 절대 못 바꾸는 운명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고, 시간이 흐르면 모양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에요.
아피아의 생각은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과 어떻게 다를까요.
표로 견주어 볼게요.
| 주제 | 흔히 하는 생각 | 아피아의 생각 |
|---|---|---|
| 정체성 | 태어날 때 정해진 고정된 것 | 함께 만들어 가고 바뀔 수 있는 것 |
| 낯선 사람 | 남은 그냥 남일 뿐 | 달라도 서로 책임이 있는 이웃 |
| 다른 문화 |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음 | 대화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음 |
특히 마지막 줄이 중요해요. "문화가 다르니 그냥 서로 모른 척하자"가 아니라, 달라도 마주 앉아 이야기하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본 거예요.
지금 우리는 휴대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소식을 봐요.
기후 변화, 전쟁, 갈 곳 잃은 사람들 이야기가 매일 들려오지요.
이런 일은 한 나라 힘만으로는 풀기 어려워요.
아피아의 답은 이래요.
온 세상 사람을 다 똑같이 사랑하라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에요.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을 '상관없는 남'이 아니라 '이야기 나눌 이웃'으로 보자는 거예요.
내 뿌리를 지키면서도 마음의 문은 닫지 않는 것, 그게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작은 태도예요.
콰메 앤서니 아피아는 두 나라의 피가 섞인 자기 삶에서 출발해, 우리 모두에게 집이 두 개 있다고 말해요.
하나는 나를 키운 가까운 자리, 또 하나는 낯선 사람까지 품는 넓은 세계예요.
세계시민주의는 내 뿌리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 뿌리를 지키면서도 남에게 마음을 열어 두라는 권유예요.
정체성은 나를 설명해 주지만 가두는 상자는 아니고, 우리는 서로 달라도 대화할 수 있어요.
다음에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남'이 아니라 '아직 이야기 나누지 않은 이웃'으로 보는 것, 그게 아피아가 건넨 가장 작고 단단한 생각이에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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