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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레게가 말한 '사상(Gedanke)'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개인적 느낌이 아니라, 누가 생각하든 똑같이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문장의 객관적 내용이에요.

1918년, 일흔이 된 독일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는 '사상(Gedanke)'이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어요. 그는 수리논리학과 분석철학의 출발점을 만든 사람인데, 이 글에서 단순하면서도 묘한 질문을 던져요. "우리가 하는 그 생각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머릿속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죠. 오늘은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이 질문을 천천히 따라가 볼 거예요.

프레게는 '생각'을 두 가지로 나눠요. 하나는 내 머릿속에만 있는 느낌이에요. 빨간 사과를 볼 때 내가 느끼는 빨강과 친구가 느끼는 빨강이 똑같은지는 누구도 확인할 길이 없어요. 이런 건 사람마다 다르고, 남에게 그대로 건넬 수도 없어요. 프레게는 이걸 '표상'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사상'은 달라요. '사상'은 내 머릿속을 떠나서도 멀쩡히 살아 있는, 모두가 똑같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이에요. 마치 빵 한 덩이를 여럿이 나눠 먹어도 그게 같은 빵인 것처럼요.

'2 더하기 2는 4'라는 문장을 떠올려 볼게요. 이건 내가 생각하든, 친구가 생각하든, 2천 년 전 사람이 생각하든 똑같이 참이에요. 내가 잠든 사이에도 이 사실은 거짓이 되지 않아요.
프레게는 여기서 무릎을 쳤어요. 만약 사상이 그냥 내 머릿속 느낌이라면, 사람 수만큼 다른 '2 더하기 2는 4'가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분명 같은 것을 두고 이야기하죠. 그러니 사상은 한 사람의 머릿속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가리킬 수 있는 공용 물건에 가까워요.

재미있는 점이 있어요. '고양이가 쥐를 쫓는다'와 '쥐가 고양이에게 쫓긴다'는 단어 배열이 다르지만, 담고 있는 사상은 같아요. 한국어 '눈이 내려요'와 영어 'It snows'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문장은 사상을 담는 '옷'이고, 사상은 그 안의 '알맹이'예요. 옷은 언어마다, 표현마다 다 달라도 알맹이는 하나일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번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옷을 갈아입혀도 알맹이가 그대로 옮겨 가기 때문이에요.

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는 거예요. '지구는 둥글다'는 참인 사상, '지구는 네모다'는 거짓인 사상이에요.
반면 '문 좀 닫아 줄래?'나 '안녕!' 같은 말은 참도 거짓도 아니에요. 그래서 프레게가 말한 엄밀한 의미의 사상은 담고 있지 않아요. 사상이란 결국, 세상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면서 맞거나 틀릴 수 있는 내용인 셈이에요.

그럼 이 사상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프레게의 대답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예요. 피타고라스가 태어나기 전에도 직각삼각형의 규칙은 참이었어요. 사람이 그 규칙을 지어낸 게 아니라, 이미 거기 있던 것을 찾아낸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상을 발명하는 게 아니라 발견해요. 없던 산봉우리를 새로 쌓는 게 아니라, 원래 있던 봉우리를 찾아 오르는 것에 가까워요. 프레게는 물질도 아니고 마음속 느낌도 아닌 이 사상들의 영역을 '제3의 영역'이라고 불렀어요.

프레게의 사상은 세 가지로 기억하면 돼요. 첫째, 머릿속 개인적 느낌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붙잡는 객관적인 내용이에요. 둘째, 문장이라는 옷은 달라도 알맹이는 하나일 수 있어요. 셋째,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고, 우리가 만든 게 아니라 발견한 것이에요. 한 수학자가 "생각은 어디 있을까"라는 물음을 끝까지 파고든 덕분에, 우리는 서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유 하나를 손에 쥐게 된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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