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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직접지는 내가 직접 겪어서 아는 것이고, 기술지는 설명을 통해서 아는 것이에요.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대상도 '설명'을 거치면 알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세종대왕을 알고 있나요? 당연히 안다고 답하겠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세종대왕을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어요. 목소리를 들은 적도, 얼굴을 본 적도 없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를 '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 평범해 보이는 질문을 아주 진지하게 파고든 사람이 바로 버트런드 러셀이에요. 1872년부터 1970년까지 98년을 살았던 영국의 철학자이고, 1950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이지요. 그는 '안다'는 말 안에 사실 두 종류가 숨어 있다고 보았어요.

첫 번째는 직접지예요. 말 그대로 '직접 만나서 아는 것'이지요.
지금 여러분 앞에 빨간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해볼게요. 그 빨간 색깔, 손에 닿는 매끈한 느낌, 한 입 베어 물 때의 단맛. 이런 것들은 누가 설명해 줘서 아는 게 아니에요.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맛봐서 바로 알게 된 것이지요. 중간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아요.
러셀은 이렇게 무언가를 사이에 두지 않고 곧바로 닿아서 아는 앎을 직접지라고 불렀어요. 내가 지금 느끼는 아픔, 눈앞에 보이는 색깔, 들리는 소리. 이런 것들이 직접지의 예예요. 가장 생생하고, 가장 의심하기 어려운 앎이지요. 지금 단맛을 느끼고 있는데 '이게 정말 단맛일까?' 하고 의심하기는 어렵잖아요.

두 번째는 기술지예요. '기술'은 어렵게 들리지만, 그냥 '설명'이라는 뜻이에요.
다시 세종대왕으로 돌아가 볼까요. 우리는 세종대왕을 직접 만난 적이 없어요. 대신 '한글을 만든 조선의 임금'이라는 설명을 통해 그를 알지요. 즉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설명의 다발을 통해 한 사람을 붙잡는 거예요. 이게 바로 기술지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래요. 직접지가 친구를 직접 만나는 일이라면, 기술지는 친구가 보내준 '키 크고 안경 쓴 사람을 찾아라'라는 쪽지를 들고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에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설명을 따라가면 그 사람에게 닿을 수 있지요.
신기한 점은, 우리가 아는 것 대부분이 사실 기술지라는 거예요. 우주의 가장 먼 별, 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직접 겪지 않고 설명을 통해 알아요. 직접지는 좁고, 기술지는 아주 넓어요.
그냥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러셀에게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러셀은 복잡한 생각을 잘게 쪼개서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보려는 사람이었어요. 이런 태도를 논리적 원자론이라고 불러요.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원자가 나오듯, 우리의 앎도 쪼개고 쪼개면 결국 '직접 겪어서 아는 것'에 가닿는다고 본 거예요.
생각해 보면 기술지도 결국 직접지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한글을 만든 임금'이라는 설명 속의 '한글', '임금' 같은 말들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어디선가 직접 겪어 본 것들에서 출발하니까요. 러셀은 아무리 멀고 추상적인 앎이라도 그 맨 밑바닥에는 내가 직접 닿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어요. 이렇게 앎의 뼈대를 차근차근 따져 묻는 방식이 이후 분석철학이라는 큰 흐름의 출발점이 되었지요.

러셀은 '안다'는 말을 두 개로 나눴어요. 직접 겪어서 아는 직접지, 그리고 설명을 통해서 아는 기술지. 사과의 단맛은 직접지로 알고, 만난 적 없는 세종대왕은 기술지로 알아요. 우리가 아는 것의 대부분은 사실 기술지지만, 그 뿌리를 따라 내려가면 결국 내가 직접 닿은 직접지에 닿는다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오늘 러셀이 던진 질문의 절반은 이미 풀린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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