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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존 설은 '중국어방'이라는 상상 실험으로, 컴퓨터가 규칙에 따라 기호를 바꿔 그럴듯한 답을 내놓아도 그 뜻을 진짜로 이해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어요. 사람의 마음에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하는 힘', 곧 지향성이 있다고 본 거죠.

여러분이 스마트폰에게 "오늘 날씨 어때?"라고 물으면 척척 답이 나오죠. 그런데 그 기계가 '날씨'라는 게 뭔지 진짜로 알고 있을까요? 미국 철학자 존 설은 1932년에 태어나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가르친 사람인데, 1980년에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파고들었어요. 이 글에서는 그가 만든 유명한 상상 실험과, 사람 마음이 가진 특별한 점을 하나씩 풀어 볼게요.

이렇게 상상해 봐요. 중국어를 한 글자도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 갇혀 있어요. 문틈으로 중국어가 적힌 쪽지가 들어와요. 방 안에는 두꺼운 규칙책이 있는데, '이런 모양 글자가 들어오면 저런 모양 글자를 내보내라'고 자기 나라 말로 적혀 있죠. 그 사람은 뜻은 하나도 모른 채 모양만 맞춰서 답을 내보내요.
방 밖에서 보면 어때요?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척척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저 그림 맞추기를 했을 뿐이죠. 설은 "컴퓨터가 하는 일이 바로 이거다"라고 말했어요. 글자를 규칙대로 바꿔 답을 내놓는 것과, 그 뜻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거예요. 읽을 줄 모르는 글자로 된 요리법을 모양만 보고 따라 한다고 그 요리를 이해한 건 아니듯이요.

설이 컴퓨터에 없다고 본 것이 바로 '지향성'이에요. 어렵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우리 생각은 언제나 무언가를 '향하고' 있다는 거예요. 화살이 과녁을 향하듯, "나는 사과가 먹고 싶어"라는 생각은 저기 있는 사과를 가리켜요.
반면 컴퓨터 속 기호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향하지 않아요. 화면에 '사과'라고 떠도, 기계에게 그건 그냥 까만 점들의 배열일 뿐이죠. 거기에 사과라는 의미를 붙여 주는 건 그걸 보는 우리예요. 마음은 스스로 의미를 향하지만, 기계는 우리가 의미를 빌려줘야 한다는 점, 설은 이 차이를 아주 중요하게 봤어요.

그럼 그 '향하는 마음'은 어디서 올까요? 설의 답은 의외로 담백해요. 의식은 유령 같은 신비한 게 아니라, 뇌가 실제로 만들어 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거예요. 위가 음식을 소화시키듯, 뇌가 의식을 일으킨다고 본 거죠.
그래서 설은 이렇게 비꼬았어요. 컴퓨터로 소화 과정을 아무리 똑같이 흉내 내도 그 컴퓨터가 피자를 진짜로 소화시키지는 못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뇌를 흉내 낸 프로그램이 돌아간다고 해서 거기에 진짜 의식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흉내와 진짜는 다르니까요.

설은 마음뿐 아니라 '말'도 깊이 파고들었어요. 스승 격인 영국 철학자 J.L. 오스틴의 생각을 이어받아, 1969년에 펴낸 책에서 '언어 행위론'을 다듬었죠. 핵심은 이래요. 우리는 말로 사실을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말로 '행동'을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약속할게"라고 말하는 순간, 약속이라는 행동이 실제로 일어나요. "사과합니다"라고 하면 사과가 이뤄지고요. 야구 심판이 "아웃!"이라고 외치면 그 말 한마디로 정말 아웃이 되죠. 말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는 점을 설은 차근차근 정리해 보여 줬어요.

존 설은 한 가지를 끈질기게 물었어요. 흉내가 진짜와 같은가? 중국어방의 사람도, 똑똑해 보이는 컴퓨터도, 규칙대로 답을 잘 내놓지만 뜻을 이해하지는 못해요. 사람 마음에는 무언가를 스스로 향하는 힘인 지향성이 있고, 의식은 뇌가 만드는 진짜 현상이며, 우리가 내뱉는 말은 그 자체로 행동이 되죠. 다음에 인공지능이 똑똑하게 답할 때, '이게 이해하는 걸까, 모양만 맞추는 걸까'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설의 질문이 가깝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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