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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 두 명이 같은 영화를 보고 나왔어요. 한 명은 "인생 영화"라며 별 다섯 개를 주고, 다른 한 명은 "두 시간 아까웠다"며 고개를 저어요. 같은 영화, 같은 두 시간인데 평이 정반대예요. 그럼 그 영화는 진짜 좋은 영화일까요, 아니면 별로인 영화일까요?
이럴 때 우리는 보통 "누가 맞는지" 가리려고 해요.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어느 쪽도 딱 잘라 증명하기가 어려워요. 좋다는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고, 별로라는 친구의 말도 일리가 있거든요. 바로 이 막막한 자리를 평생 들여다본 사람이 있어요. 약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피론이에요.
피론은 기원전 360년쯤부터 270년쯤까지 살았던 그리스 사람이에요. 엘리스라는 작은 도시 출신이고요. 이력 중에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동쪽으로 큰 원정을 떠날 때, 피론도 그 행렬을 따라 멀리 인도 근처까지 갔다 왔다고 전해져요.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던 시절에 걸어서 몇 달, 수천 킬로미터를 오간 거예요.
그 먼 길에서 피론은 생김새도 말도 다른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났어요. 한 동네에서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일이 다른 동네에선 흉이 되고, 한쪽이 신성하게 모시는 것을 다른 쪽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나라마다, 사람마다 "이게 맞다"는 기준이 이렇게나 다르구나. 이 경험이 그의 머릿속에 깊게 남았어요.
여기서 피론이 내린 결론이 재미있어요. 보통은 "그래도 어딘가에 진짜 정답이 있겠지" 하고 더 파고들어요. 피론은 반대로 갔어요. "어느 쪽이 맞는지 내 힘으로는 끝내 못 가린다면, 차라리 판단을 내리지 말자."
이걸 그리스 말로 에포케라고 해요. 우리말로 옮기면 판단 중지예요. 시험에서 헷갈리는 보기 두 개를 놓고, 아무거나 찍지도 않고 그냥 비워 두는 것과 비슷해요. 틀린 답을 우기지도 않고, 억지로 맞다고 못 박지도 않고, "나는 모르겠다, 여기서 멈춘다"며 손을 드는 거예요. 답을 안 내는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쪽에 가까워요.
판단을 멈추면 속이 답답할 것 같죠? 그런데 피론이 말한 효과는 정반대였어요.
생각해 보세요. "이게 맞다"고 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답에 매달리게 돼요. 틀릴까 봐 불안하고, 반대 의견을 만나면 욱하고, 내 답을 지키느라 마음이 피곤해져요. 그런데 "나는 어느 쪽인지 정하지 않겠다"고 내려놓으면, 붙들고 지킬 답 자체가 없으니 흔들릴 일도 줄어들어요. 손에 꽉 쥔 것이 없으면 빼앗길 걱정도 없는 것과 같아요.
피론은 이렇게 따라오는 평온한 마음 상태를 무척 귀하게 봤어요. 옳고 그름을 억지로 정하지 않을 때 찾아오는 고요함이요. 그가 보기엔 그 고요함이 잘 사는 것에 한 걸음 더 가까웠어요.
회의주의라고 하면 "세상만사 다 의심하고 부정하는 까칠한 태도"로 오해하기 쉬워요. 그런데 피론의 회의주의는 그런 게 아니에요.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에 훨씬 가까워요. 모르는 걸 안다고 우기지 않는 정직함이라고 봐도 좋아요.
재미있는 건, 피론은 책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의 생각은 제자 티몬이 받아 적어 후대에 전해졌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피론이 절벽이든 달려오는 마차든 개의치 않아 친구들이 늘 옆에서 말렸다는 식의 과장된 이야기도 붙었는데, 이런 일화들은 꾸며진 전설에 가까워요. 정작 중요한 건 그런 기행이 아니라, "끝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그냥 두는" 태도 그 자체예요.
피론의 이 태도는 한 사람의 별난 성격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확실하다고 쉽게 단정하지 말고, 양쪽을 나란히 놓고 한번 멈춰 보자"는 생각이 그 뒤로 여러 철학자에게 이어졌거든요. 이렇게 이어진 흐름이 서양 철학에서 하나의 큰 줄기인 회의주의로 자라났어요.
오늘날에도 이 태도는 쓸모가 있어요. 인터넷에는 "이게 진실이다"라고 외치는 말이 넘쳐나요. 그럴 때 한 박자 멈춰서 "정말 그럴까, 반대편 이야기는 뭘까" 하고 판단을 잠깐 미뤄 두는 것. 피론이 2300년 전에 먼저 보여 준 이 멈춤이,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힘이 되어 줘요.
피론은 옳고 그름을 끝까지 가릴 수 없을 때, 억지로 답을 정하는 대신 판단을 멈추기로 한 사람이에요. 그 멈춤을 에포케라 부르고, 거기서 따라오는 마음의 고요함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어요. 다 의심해서가 아니라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려는 이 정직한 태도에서 고대 회의주의가 시작됐고요. 다음에 누가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일을 만나면, "아직은 모르겠다"고 그냥 두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답이 될 수 있다는 걸, 피론이 우리보다 한참 먼저 알려 준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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