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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 두 명이 다퉈요. 한 명은 "어제 분명히 비 왔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아니야, 흐리기만 했지"라고 우겨요. 둘 다 자기 눈으로 봤다는데, 여러분은 누구 말이 맞는지 딱 잘라 정할 수 있나요? 어느 쪽도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고 둘 다 맞을 수는 없잖아요. 이럴 때 우리는 보통 "음, 잘 모르겠어. 일단 정하지 말고 넘어가자"라고 하죠.
약 2300년 전, 바로 이 "잘 모르겠으니 정하지 않을래" 한마디를 평생의 생각으로 삼은 철학자가 있었어요. 이름은 피론이에요. 그리고 그가 말한 이 멈춤에 '에포케'라는 이름이 붙어요.
피론은 기원전 360년쯤 그리스의 엘리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살던 시절에 알렉산더 대왕이 동쪽으로 큰 원정을 떠났는데, 피론도 그 군대를 따라 멀리 인도 근처까지 갔다고 전해져요. 비행기도 자동차도 없던 때라, 걸어서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여행이었죠.
그 먼 곳에서 피론은 인도의 수행자들을 만났어요. 가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었죠. 학자들은 이 만남이 피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거라고 봐요. 재미있는 건, 피론은 책을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그의 제자 티몬이 전한 이야기를 통해 피론을 알아요. 스승의 생각을 제자가 입에서 입으로 이어 준 셈이에요.
피론의 핵심 생각은 그리스 말로 '에포케'예요. 우리말로는 '판단 중지'라고 옮겨요. 말은 어렵게 들리지만, 그리는 장면은 아주 간단해요.
양팔 저울을 떠올려 보세요. 한쪽 접시에는 "비가 왔다"는 증거를, 다른 쪽에는 "비가 안 왔다"는 증거를 올려요. 그런데 양쪽 무게가 똑같아서 저울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아요. 이때 억지로 한쪽을 손으로 누르지 않고, 저울이 멈춘 그대로 가만히 두는 것. 그게 바로 에포케예요. 답을 '아니다'로 정하는 것도 아니고 '맞다'로 정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정하기를 잠시 멈추는 거죠.
피론은 세상 많은 일이 이 저울과 같다고 봤어요. 같은 물도 더운 날엔 시원하고 추운 날엔 차갑게 느껴지죠. 똑같은 꿀이 건강한 사람 입엔 달지만, 열이 나는 사람 입엔 쓰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니 "이게 진짜로는 어떻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보는 사람과 처지에 따라 달라 보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무리해서 정하지 말고, 멈춰 두자"고 했어요.
여기서 피론의 진짜 발견이 나와요. 무언가를 꼭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바빠져요. "맞나 틀리나, 좋나 나쁘나" 끝없이 따지느라 머릿속이 시끄러워지죠. 시험 답을 못 고르고 계속 고민할 때의 그 답답함을 떠올리면 비슷해요.
그런데 "꼭 지금 정하지 않아도 돼,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자"고 손을 탁 놓는 순간, 마음이 조용해져요. 피론은 이 고요한 상태를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봤어요. 옛 그리스 사람들은 이렇게 흔들림 없는 마음의 평온을 '아타락시아'라고 불렀어요. 판단을 멈추는 일이 오히려 마음을 푹 쉬게 해 준다는 거죠. 정하기를 포기하니 도리어 편해지는, 조금 뜻밖의 길이에요.
피론을 두고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요. 너무 아무것도 정하지 않아서 길에 마차나 절벽이 와도 안 피하니, 친구들이 늘 따라다니며 지켜 줬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예요. 다만 이런 일화는 뒷사람들이 부풀린 것으로 보여요. 실제로 피론은 아흔 살 가까이 꽤 평온하게 오래 살았다고 전해지거든요. 정말 길도 못 건너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살기 어려웠겠죠.
그러니 에포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하니 있어"가 아니에요. 밥 먹고 길 걷는 일상은 평범하게 잘 살되,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을 억지로 단정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는 쪽에 더 가까워요. 모르는 것 앞에서 솔직하게 "아직 모르겠어"라고 인정하는 용기에 가깝죠.
피론은 옳고 그름을 억지로 정하지 않고, 저울이 멈춘 자리에 그대로 두는 일, 곧 에포케를 말한 사람이에요. 그가 본 것은 단순해요. 확실하지 않은 일을 꼭 정하려 들면 마음이 시끄러워지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두면 마음이 조용해진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고대 회의주의라 불리는 새로운 흐름의 첫머리에 서게 됐어요. 다음에 누가 맞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순간이 오면, 한 번쯤 피론처럼 "일단 판단은 멈춰 둘래"라고 말해 봐도 괜찮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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