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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230년쯤 전, 영국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고 상상해 볼게요. 아마 부모님은 여러분에게 책을 깊이 읽거나 어려운 셈을 따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을 거예요. 대신 예쁘게 웃는 법, 피아노를 가볍게 치는 법, 손님 앞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쳤겠죠. 그 시절 여자아이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목표는 딱 하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였거든요. 학교 성적보다 좋은 신랑감의 눈에 드는 일이 훨씬 중요했어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에 태어나 이런 세상을 직접 겪은 사람이에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남의 집 아이를 돌보는 가정교사로도 일해 봤고, 여자가 혼자 벌어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몸으로 알았죠. 그러다 아주 충격적인 한마디를 세상에 던졌어요.

매춘이 뭔지 아주 간단히만 말하면, 몸을 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일이에요. 듣기만 해도 점잖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렇게 물었어요. 가진 돈도 없고 가질 수 있는 직업도 없는 여자가,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예쁘게 꾸미고 남자 비위를 맞춰서 부자 남편을 얻은 다음, 평생 그 남편이 주는 밥과 집에 기대어 산다면, 이게 매춘과 정말로 다른 걸까요? 한쪽은 하룻밤이고 한쪽은 평생이라는 차이뿐, 자기 매력과 순종을 안전한 생활과 맞바꾼다는 점은 똑같지 않냐는 거였어요.
생각해 보면 이런 거예요. 용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아이가, 갖고 싶은 걸 사려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굴어서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없잖아요. 돈줄을 쥔 사람이 따로 있으면, 쥐지 못한 사람은 마음에 없어도 웃어야 해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본 결혼이 딱 그랬어요.
다른 점이 하나 있긴 했어요. 결혼에는 법과 예식이 붙어서 "점잖고 거룩한 일"로 보인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이런 결혼을 가리켜 '합법적 매춘'이라고 불렀어요. 법이 도장을 찍어 준 거래라는 뜻이에요.

이 말이 너무 심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시대 사정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져요.
그때 여자는 좋은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도 가질 수 없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자기 재산을 자기 이름으로 갖는 것조차 어려웠죠. 한마디로 혼자 힘으로 먹고살 길이 거의 다 막혀 있었어요. 그러니 여자에게 결혼은 사랑의 문제이기 전에 당장 굶지 않기 위한 생존의 문제였어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보기엔, 여자를 생각할 줄 모르는 예쁜 인형처럼 키워 놓고 "넌 시집이나 잘 가라"며 등을 떠미는 사회가 진짜 문제였어요. 헤엄을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면서,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한심하다고 혀를 차는 셈이니까요.
여기서 오해하면 안 돼요. 그는 "결혼은 더러우니 하지 말자"고 한 게 아니에요. 바꾸고 싶었던 건 결혼 자체가 아니라, 여자가 그 거래에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1792년에 펴낸 책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이렇게 주장했어요. 여자에게도 남자처럼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고, 스스로 생각하고 따질 줄 아는 한 사람으로 대접하라고요. 그러면 여자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같이 살고 싶은 친구이자 동반자를 직접 골라서 결혼하게 된다는 거죠. 한쪽이 다른 쪽에 빌붙는 사이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나란히 서는 결혼 말이에요. 그가 꿈꾼 건 결혼을 없애는 세상이 아니라, 여자도 "굳이 안 해도 살 수 있는데 그래도 너랑 하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었어요.

울스턴크래프트가 특별했던 건, 여자가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게 타고난 천성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과 불공평한 규칙 탓이라고 또박또박 말한 점이에요. 그 전까지 많은 사람이 "여자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고 여겼거든요. 이 생각은 200년 뒤 페미니즘이 크게 펼쳐 낸 씨앗이 됐어요.
그는 윌리엄 고드윈이라는 사람과 결혼했고, 1797년에 딸을 낳다가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딸이 자라서 쓴 소설이 바로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이에요.

울스턴크래프트의 말은 결혼을 욕하려던 게 아니었어요. 여자에게 결혼 말고는 먹고살 길을 주지 않으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거래를 예쁘게 포장하지는 말라는 뜻이었죠. 그가 내놓은 답도 결혼을 없애는 게 아니라, 여자도 스스로 설 수 있게 가르치자는 것이었고요. 누군가에게 갈 수 있는 길이 하나뿐일 때 그건 진짜 선택이 아니라는 것, 230년 전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지금도 곱씹어 볼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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