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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62년, 장 자크 루소가 '에밀'이라는 책을 냈어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이야기한 교육책인데, 당시 사람들이 푹 빠져 읽을 만큼 인기가 많았어요. 루소는 책에서 '에밀'이라는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세워요. 에밀은 숲을 뛰어다니고, 직접 만져 보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라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궁금해서 배우는 아이로요. 어른이 정답을 떠먹여 주는 대신, 아이가 직접 부딪히며 깨닫게 하자는 거죠. 여기까지는 참 좋아 보이죠.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루소는 에밀의 짝이 될 여자아이 '소피'도 그렸는데, 소피를 키우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거든요. 같은 책 안에서 두 아이의 운명이 갈리는 거예요.

루소가 말한 소피의 교육은 한마디로 '에밀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교육'이었어요. 소피는 예쁘고, 얌전하고, 남자의 말을 잘 따르도록 길러져요. 깊이 생각하는 법보다는 남을 즐겁게 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우죠. 소피의 목표는 자기 인생이 아니라 에밀의 인생을 돕는 거예요.
쉽게 비유하면 이래요. 한 아이에게는 "마음껏 뛰어놀고 무엇이든 질문하렴" 하고, 옆 아이에게는 "넌 거실 한구석에 예쁘게 놓인 화분이 되렴" 하는 거예요. 같은 집에서 자라는데 한 명은 사람으로, 한 명은 장식으로 키우는 셈이죠. 더 놀라운 건, 루소가 이걸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여자의 본래 성질에 딱 맞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거든요.

이 대목에서 한 사람이 책상을 탁 쳤어요. 영국의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년부터 1797년까지 살았어요)예요. 사실 그녀는 루소를 무척 존경하던 독자였어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자는 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소피 이야기만큼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어요. 존경하던 사람이 여자아이 앞에서만 말을 쏙 뒤집는 걸 본 거니까요.
그녀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여자가 배우지 못하면 얼마나 쉽게 휘둘리는지 직접 겪었거든요. 그래서 1792년에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써요. 핵심은 짧고 분명해요. "여자에게도 이성이 있어요." 여기서 이성이란 스스로 따져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머릿속 힘을 말해요. 남자만 가진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거죠. 그러니 여자도 예뻐지는 법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울스턴크래프트의 반박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 여기예요. 그 시절 사람들은 "여자는 원래 약하고 생각이 얕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순서를 거꾸로 짚어요. 약하게 키워 놓고 약하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요.
비유하면 이래요. 어떤 아이를 방에만 가둬 두고 한 번도 뛰게 하지 않은 다음, "봐, 얘는 달리기를 못하잖아" 하는 것과 같아요. 못하는 게 아니라 기회를 안 준 거죠. 다리가 약한 게 먼저가 아니라, 쓰지 못하게 한 게 먼저인 거예요. 여자에게 생각할 기회는 주지 않고 꾸미고 비위 맞추는 일만 시켜 놓고는, 그 결과를 두고 "여자는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죠. 약함은 타고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거라고요.

울스턴크래프트는 한 걸음 더 들어가요. 꾸미고 사랑받는 데만 길든 사람은 결국 자기 머리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고요. 늘 남의 눈에 들려고만 하면, 옳은지 그른지보다 예뻐 보이는지를 먼저 따지게 되니까요. 생각하는 근육을 안 쓰니 점점 굳어 버리는 거죠.
이건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녀는 봤어요. 어머니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알아야 아이도 그렇게 키울 수 있고, 아내가 한 사람 몫의 판단을 해야 가정도 건강해진다는 거죠. 그러니 여자를 가르치는 일은 여자 한 명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어요. 장식으로 키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손해 보는 건 결국 모두라는 거예요.

울스턴크래프트가 끝까지 밀고 간 생각은 이거예요.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는 거요. 정직함, 용기, 절제 같은 됨됨이는 모두 같은 이성에서 나오는데, 이성에 남녀 구분이 없으니 됨됨이에도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거죠. 남자에게만 통하는 정직, 여자에게만 통하는 용기 같은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녀는 여자를 위한 특별한 교육이 아니라, 남자가 받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교육을 요구했어요. 여자가 누군가의 곁을 빛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한 사람이 되도록요. 이 주장이 훗날 교육과 이성과 평등을 앞세운 근대 페미니즘의 출발점이 돼요.

루소는 남자아이는 생각하도록, 여자아이는 사랑받도록 따로 키우라고 했어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기에 맞서 "여자에게도 이성이 있고, 약해 보이는 건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라고 반박했죠. 약함은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가둬 둔 결과라는 거예요. 같은 이성을 가졌으니 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여자를 장식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자는 외침이었어요. 230여 년 전에 던진 이 한마디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의 씨앗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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