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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한 번에 읽기도 벅찬 이름이죠. 그런데 이 긴 이름 안에 그의 정체가 거의 다 들어 있어요. '스코투스'는 당시 말로 '아일랜드 사람', '에리우게나'도 '에린, 곧 아일랜드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이거든요. 이름만 풀어도 "아일랜드에서 온 요하네스"인 셈이에요.
그가 살던 때는 서기 800년대, 지금부터 1200년쯤 전이에요. 이 무렵 서유럽에서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라틴어가 공용어였고, 그리스어로 된 옛 책들은 그냥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었죠. 그런데 이 아일랜드 사람은 그리스어를 술술 읽었어요. 그래서 프랑스 왕이던 '대머리왕 샤를'이 그를 궁정으로 불러들였답니다.

왕이 그에게 맡긴 첫 일은 번역이었어요. 마침 동방의 황제가 선물로 보내온 그리스어 신학책이 한 권 있었는데, 정작 궁정에서 그 글자를 읽어 낼 사람이 없었거든요.
이걸 가볍게 보면 안 돼요. 도서관에 굉장한 책이 꽂혀 있는데 아무도 그 글자를 못 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있으나 마나죠. 에리우게나는 그렇게 잠긴 문을 따 준 사람이었어요. 그가 라틴어로 옮긴 책들은 뒤에 올 수백 년 동안 유럽 신학자들이 두고두고 펴 보는 보물이 됐어요. 번역만 했어도 이름을 남겼을 텐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에리우게나가 매달린 질문은 뜻밖에도 단순해요. "이 세상 모든 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
어린아이도 한 번쯤 밤에 천장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죠. 그는 여기에 아주 큰 그림으로 답하려 했어요. 그 답을 담은 책이 『자연의 구분에 관하여』예요. 여기서 '자연'은 풀과 나무만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신부터 저 길가의 돌멩이까지, '있는 것 전부'를 한데 묶어 부르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는 우주의 모든 것을 한 권에 담으려 한 셈이죠.

그는 이 '전부'를 네 단계로 나눠 설명했어요. 말은 어렵지만, 산속 샘물 한 줄기를 떠올리면 쉬워요.
먼저 땅속 깊은 샘이 있어요. 물을 끝없이 내보내지만, 정작 자기는 누구한테서도 흘러나오지 않죠. 에리우게나에게 이게 바로 신이에요. 모든 걸 만들지만 자기는 만들어지지 않는 존재요.
샘에서 물이 솟아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어 들판을 적셔요. 이게 세상 만물이에요. 신에게서 흘러나온 것들이죠. 그리고 강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들어 하나가 돼요. 모든 것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는 장면이에요.
나와서, 한껏 펼쳐지고, 다시 돌아간다. 그의 세계관은 이 물 한 줄기의 여행과 똑 닮았어요.

이 그림은 사실 아주 오래된 두 생각을 겹쳐 놓은 거예요.
하나는 '신플라톤주의'예요. 이름은 거창하지만 핵심은 간단해요. "모든 것은 완벽한 하나의 근원에서 흘러나온다"는 생각이죠. 햇빛이 태양 한 곳에서 사방으로 퍼지듯, 세상도 근원에서 흘러나왔다고 본 거예요.
다른 하나는 기독교 신학이에요. "신이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은 언젠가 신께 돌아간다"는 이야기죠.
에리우게나는 이 둘을 한 그림 안에 포갰어요. 그리스 철학의 '흘러나옴'과 기독교의 '창조와 돌아감'을 같은 물줄기로 이은 거예요. 서로 다른 두 장의 지도를 겹쳐 봤더니 길이 딱 맞아떨어지더라, 하는 식이었죠.

그에게는 또 하나 남다른 점이 있었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보통 "성경이 그렇다니까 그런 거야"에서 멈췄어요. 그런데 에리우게나는 "제대로 따져 본 이성과 참된 믿음은 절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어요.
쉽게 말해, 묻고 따지는 걸 겁내지 말라는 거예요. 진짜 옳은 것이라면 아무리 캐물어도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믿음과 생각을 맞세우지 않고 한편으로 본 이 태도는, 모두가 권위에 고개부터 숙이던 그 시절에 꽤 용감한 것이었어요.

에리우게나가 중요한 건, 그가 거의 처음으로 "세상 전체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해 보자"고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이에요. 신과 세상, 시작과 돌아감을 한 체계 안에 다 담으려 한 이 시도가, 뒤에 올 중세 철학자들이 딛고 설 단단한 발판이 됐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따지는 생각, 곧 '형이상학'의 문을 활짝 연 셈이죠.
물론 그는 너무 멀리 앞서갔어요. 세상과 신을 너무 바짝 붙여 놓은 탓에, 한참 뒤인 1200년대에 교회는 그의 책을 위험하다며 불태우라 명령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책은 살아남았고, 수백 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멀리 내다봤는지 다시 알아봤답니다.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1200년쯤 전, 그리스어를 읽을 줄 알던 드문 아일랜드 학자였어요. 그는 "모든 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큰 질문에, 샘에서 나와 바다로 돌아가는 물처럼 모든 것이 신에게서 나와 다시 신께 돌아간다고 답했어요. 그리스 철학의 '흘러나옴'과 기독교의 '창조'를 한 그림에 겹친 이 시도가, 보이지 않는 근본을 따지는 중세 형이상학의 문을 열었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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