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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61년, 예루살렘의 한 법정에 한 남자가 끌려 나왔어요.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보내는 기차 시간표를 짜고 관리하던 사람이에요.
재판을 보러 온 사람들은 무서운 괴물을 상상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눈빛이 번뜩이고,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그런 사람이요. 그런데 막상 유리 부스 안에 나타난 건 안경을 쓰고 어깨가 좁은,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중년 회사원 같은 아저씨였어요. 그는 또박또박 말했어요. "저는 그저 위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제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에요."
이 장면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한나 아렌트예요.

한나 아렌트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정치철학자예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는데, 젊은 시절 나치가 권력을 잡자 목숨을 걸고 독일을 빠져나와 결국 미국에 자리를 잡았어요. 자기를 죽이려던 그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평생을 두고 따져 묻고 싶었던 사람이죠.
그러던 그가, 한 잡지의 의뢰를 받아 기자 자격으로 아이히만 재판을 직접 보러 간 거예요. 자신과 같은 유대인을 수없이 죽음으로 보낸 사람을 두 눈으로 본 거죠. 그리고 그 자리에서, 평생 잊지 못할 생각 하나를 얻게 돼요.

먼저 아렌트가 평생 매달린 주제부터 볼게요. 바로 전체주의예요. 그가 쓴 두꺼운 책 '전체주의의 기원'은 이걸 파고든 책이에요.
보통 나쁜 정부는 이렇게 말해요. "시키는 대로 행동해. 안 그러면 벌을 줄 거야." 행동만 단속하는 거죠. 그런데 전체주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요. 행동만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까지 한 가지 색으로 칠하려고 해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반에서 한 아이가 모두에게 "저 친구랑 놀면 너도 따돌릴 거야"라고 겁을 줘요. 그러면 아이들은 무서워서 서로 눈치만 보고, 진짜 속마음은 아무에게도 말 못 하게 돼요. 친구 사이의 믿음이 싹 사라지는 거죠. 전체주의는 이걸 나라 전체에 해요. 사람들을 서로 떼어 놓고, 외롭게 만들고, 옆 사람조차 믿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렇게 혼자가 된 사람은 "다 같이 이 길로 가자"는 거대한 구호에 너무나 쉽게 휩쓸려요.

자, 이제 아렌트가 법정에서 얻은 그 생각으로 돌아가요. 그는 아이히만을 보며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끔찍한 일을 한 사람이 특별히 잔인하거나 미친 사람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거든요.
아이히만은 자기 입으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보였어요. "내가 짜는 이 기차표가 진짜 무슨 뜻일까, 이 끝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할까"를 한 번도 멈춰 서서 묻지 않은 거예요. 그저 윗사람에게 칭찬받는 유능한 직원이 되고 싶어서, 빈칸 채우듯 서류를 처리했을 뿐이죠.
아렌트는 여기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거대한 악은 꼭 뿔 달린 괴물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를 멈춘 아주 평범한 사람에게서도 나온다는 거예요.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 뒤에 숨어,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순간에요.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바로 여기 있어요. 끔찍한 일을 막는 힘은 대단한 영웅심이 아니라, 멈춰 서서 스스로 생각하는 평범한 습관이라는 거예요.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윗사람이 시켰다고, 규칙이 그렇다고 그냥 따라가는 대신, "이게 정말 옳은 일일까"를 내 머리로 한 번 더 묻는 것. 아렌트는 이 작은 멈춤을 정치적 판단이라고 불렀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는 않는 일이죠.

한나 아렌트는 자기를 죽이려던 전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평생 따져 물은 정치철학자예요. 그는 사람들을 외롭게 떼어 놓고 생각을 한 색으로 칠하는 것이 전체주의의 무기라고 봤어요. 그리고 끔찍한 일을 한 아이히만이 괴물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데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죠. 그가 우리에게 건넨 말은 단순해요. 남이 시킨다고 그냥 따라가지 말고, 멈춰 서서 내 머리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는 것. 그 작은 멈춤이 우리를 지킨다는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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